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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구라트의 재발견, '로저 마크 II'로 증명한 카바의 가치

지금 카바(Cava) 시장의 판도는 변화하고 있다. 대량 생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특정 구획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장기 숙성 잠재력을 입증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그 변화의 중심에 바로 로저 구라트(Roger Goulart)의 '로저 마크 II(The Roger Mark II)'가 있다. 로저 구라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스로를 독보적인 마스터피스로 선언해오며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지 짐작된다. 이제는 로저 구라트의 진가를 '마크 II'로 다시 확인할 시간이다.  


[한국을 찾아 로저 구라트의 이야기를 전한 에두아르 카프데비아(Eduard Capdevilla) 수출 매니저, 사진: 정수지]


카바의 재정의, 그리고 그 정점에 선 로저 구라트

와인 세계에서 카바는 오랫동안 샴페인의 '가성비 좋은 대체제'로 소비되어 왔다. 전통 방식으로 생산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스파클링 와인. 소비자와 업계 모두 이 익숙한 프레임 안에서 카바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지금, 카바는 그 정의 자체가 근본부터 변화하고 있다.


최근 도입된 규제 변화는 단순한 제도 정비를 넘어선다. 카바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와인인가'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든 구조적 전환이다. 생산 지역의 세분화, 구아르다 수페리오르(Guarda Superior) 등급을 통한 숙성 기준 강화, 유기농 재배 의무화는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카바를 '저렴한 스파클링 와인'이 아닌, 테루아 기반의 고품질 와인으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거대한 변화는 더 이상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잔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로저 구라트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카바의 새로운 위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이름이다. 


카바로 남아, 카바를 재정의하다

1882년 페네데스에서 시작된 로저 구라트의 행보는 단순한 역사적 유산을 넘어, 최근 카바를 둘러싼 격변 속에서 보여준 선택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코르피낫(Corpinnat) 등으로의 이탈 움직임이 거세지며 일부 생산자들이 DO 카바(D.O. Cava)를 떠날 때, 로저 구라트는 카바라는 울타리 안에 남는 길을 택했다. 다만 그 대응은 누구보다 단호했다.


로저 구라트는 대량 생산 중심의 구조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대신 장기 숙성 중심의 포트폴리오 구축, 빈티지 카바에 대한 집중, 포도밭 단위의 정밀한 테루아 접근, 그리고 주문 시점에 맞춘 데고르주망(Recently Disgorged)이라는 명확한 전략을 세웠다. 이는 카바라는 틀 안에 머물면서도 그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프리미엄'을 입증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지닌 '카바'라는 이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2021년 개편된 규정의 혜택을 온전히 반영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로저 구라트는 결과로 말한다. “카바를 떠나야 고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충분히 정점에 이를 수 있다.”


[로저 마크 II, 사진: 정수지]


로저 마크 II, 카바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마스터피스

로저 구라트가 지향하는 '카바의 재정의'는 '로저 마크 II(The Roger Mark II)'라는 단 한 병의 마스터피스로 완결된다. 2010년대 들어 단 두 차례만 생산된 와인으로, 단순한 한정판의 희소성을 넘어 카바라는 카테고리가 도달할 수 있는 품질의 정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다. 2017 빈티지 기준 한국에 배정된 240병 중 현재 약 100여 병만이 남아 있는 이 와인은, 카바의 잠재력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압도적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한 핵심 동력은 치밀하게 설계된 블렌딩 전략에 있다. 로저 구라트는 자렐로(Xarel·lo), 마카베오(Macabeo), 파레야다(Parellada)라는 스페인 전통 품종을 뼈대로 삼고, 여기에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전략적으로 더해 구조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각 품종의 역할은 정교한 건축 설계에 비유할 수 있다. 자렐로가 와인의 중심 구조를 세우고, 마카베오가 풍성한 과실미를 더하며, 파레야다가 섬세한 질감을 완성한다. 그 위에 샤르도네가 깊이와 무게감을 보태고, 피노 누아가 날카로운 산도와 긴장감을 부여한다. 즉, 전통 품종이 카바로서의 정체성을 지탱한다면, 국제 품종은 75개월에 이르는 기록적인 장기 숙성을 견뎌낼 수 있는 구조적 안정성과 잠재력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지중해성 기후가 지배적인 페네데스(Penedès)에서 서늘한 기후를 선호하는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재배한다는 것은 테루아와의 치열한 사투를 전제로 한다. 강한 일조와 제한적인 강수량은 자칫 과실의 산도를 떨어뜨리고 당도만 높여, 장기 숙성 스파클링 와인에 필수적인 '우아함'과 '긴장감'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극심한 가뭄과 기온 상승은 이러한 섬세한 품종에 더욱 가혹한 조건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로저 구라트가 이 국제 품종을 포기하지 않고 전략적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변주가 아니라, 75개월에 이르는 장기 숙성을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한 골격과 선명한 산도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덥고 건조한 페네데스의 토양에서 샤르도네의 구조감과 피노 누아의 섬세한 산도를 길러내고, 이를 로저 마크 II의 블렌딩에 정교하게 반영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로저 구라트가 단순한 생산자를 넘어, 테루아의 한계를 이해하고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재배 기술과 확고한 양조 철학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카바 안에서도 샴페인에 필적하는 하이엔드 퀴베를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치밀한 과정 속에서 완성된 결과인지를 잘 드러낸다.


여기에 압착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장 순수한 즙인 프리런 주스(Free-run juice)만을 50% 비율로 선별해 사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실제 잔 속에서 마주하는 로저 마크 II는 75개월의 숙성을 거치며 형성된 잘 익은 곡물과 구운 브리오슈, 고소한 견과류의 향이 겹겹이 쌓여 깊이 있는 복합미를 드러낸다.


[세부 산지 표시와 숙성 등급이 표기된 카바 라벨, 사진: 정수지]


특히 입안을 자극하는 입체적인 짠맛과 팽팽한 구조감은 이 와인이 단순한 '풍성함'에 머물지 않고 고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지점에 이르면 더 이상 '샴페인의 훌륭한 대안'이라는 낡은 프레임은 무의미해진다. 로저 구라트의 로저 마크 II는 누군가와 비교될 대상이 아니라, 동일한 하이엔드 스파클링 카테고리 안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며 당당히 경쟁하는 존재다.


[로저 구라트 와인들, 사진: 정수지]


'시간'으로 설계된 포트폴리오: 가성비를 넘어 다이닝의 정점으로

로저 구라트의 라인업을 살피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이들은 와인을 단순한 가격대나 법적 등급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숙성의 시간'과 그 시간이 빚어낸 '스타일의 깊이'를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정교하게 설계한다. 모든 라인업이 카바 DO의 법적 최소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숙성 기간을 거치며, 이는 곧 '시간이 완성한 풍미'라는 로저 구라트만의 확고한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로저 구라트 브뤼 Roger Goulart Brut 2023 (15개월+): 신선함과 미네랄의 집결체다. 유자, 금귤의 화사한 시트러스와 사과 껍질의 풍미 위에 조개껍데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짠맛이 더해진다. 직관적이고 리프레싱하여 입맛을 돋우는 아페리티프로서 탁월하다.


로저 구라트 조셉 바이스 Roger Goulart Josep Valls 2020 (36개월+): 쿠네(CVNE) 가문이 재발견한 역사적 인물, 조셉 바이스를 오마주한 이 와인은 복합성과 구조감의 결정체다. 갓 구운 브리오슈와 견과류의 고소함, 그리고 다시마와 미역줄기 같은 해조류의 감칠맛이 농밀하게 교차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로저 구라트 코랄 로제 Roger Goulart Coral Rosé 2022 (12개월+): 브랜드의 심미안과 정체성을 대변한다. 연한 연어빛의 코랄 로제가 딸기와 라즈베리의 화사한 과실미를 드러낸다면, 모나스트렐을 블렌딩한 로제는 보다 탄탄한 구조감과 생생한 과즙감을 바탕으로 스페인 로제 특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로저 구라트 브뤼 데미 섹 Roger Goulart Brut Demi Sec 2022 (15개월+): 시장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도사주(Dosage)를 절제해 포도 본연의 밸런스를 해치지 않았으며, 과하지 않은 단맛과 깔끔한 마무리, 그리고 부드러운 크리미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모든 와인을 관통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로저 구라트는 단순한 '거품'이 아니라,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다이닝 스파클링'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프리런 주스 50%의 순수함과 긴 숙성이 만들어낸 입체적인 짠맛, 그리고 탄탄한 구조는 신선한 해산물부터 가금류, 숙성 치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다이닝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아우른다. 결국 이들의 포트폴리오는 소비자에게 가격표가 아닌, 각자의 식탁에 어울리는 '시간의 깊이'를 선택하게 한다. 


카바는 이제 카바로 읽힌다

카바는 더 이상 샴페인의 막연한 대체재가 아니다. 이제 카바는 테루아의 언어로 말할 수 있고, 생산 방식의 치밀함으로 설명되며, 숙성의 깊이와 구조적 완결성으로 평가받는 하나의 독립된 카테고리다.


로저 구라트는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이들은 카바라는 이름을 등지는 대신, 그 울타리 안에서 카바가 지닌 잠재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 치열한 투쟁의 결과물이 바로 '로저 마크 II'다.


이 와인은 단순한 한정판의 가치를 넘어선다. 카바라는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정점에서 어떤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다. 이제 우리는 로저 구라트를 통해, 카바를 비로소 '카바' 그 자체로 온전히 읽게 되었다.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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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4.27 09:48수정 2026.04.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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