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땅에 자라는 거목 같은 와인, 호나타
남부 캘리포니아에는 약 2천만 년 전 중신세(Miocene epoch)에 해양 지각이 솟아오르며 형성된 연회색 규조토 토양, 카레아가 샌드스톤(Careaga Sandstone)이 곳곳에 분포한다. 손으로 쥐면 그대로 흘러내릴 정도로 부드러운 모래질 토양인 이곳은 수분 유지력이 낮고 영양분도 부족해 일반적인 농경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다. 또한 북부 캘리포니아와 달리 동-서 방향으로 형성된 산맥 사이로 태평양의 차가운 공기와 안개가 내륙 깊숙이 유입되며 기온까지 낮아져, 농작물 재배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호나타의 경작 시작 당시 포도밭 (제공: 나라셀라)]
나파 밸리에서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을 성공시킨 미국의 스포츠 재벌 스탠 크론키(Stan Kroenke)는 이러한 척박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땅에 주목했고, 호나타 이스테이트(Jonata Estate)를 설립했다. 하얀 모래 토양 위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그의 선택은 옳았다. 현재 이 지역은 산타 이네스(Santa Ynez) 밸리의 핵심 산지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호나타가 위치한 카레아가 토양 지대는 발라드 캐년(Ballard Canyon) AVA로 지정돼 남부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 그리고 더 힐트(The Hilt)의 CEO인 아르망 드 마그레(Armand de Maigret)를 만나 호나타와 더 힐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 더 힐트의 CEO, 아르망 드 마그레 (사진: 유민준)]
“우리는 이 지역에 어떤 품종을 심고, 어떤 포도밭을 조성할지 결정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샤토 라투르의 빈야드 매니저를 초청했어요. 그런데 그는 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런 땅에는 차라리 아스파라거스를 심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일반적인 포도 재배지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10가지가 넘는 품종을 직접 심고 끊임없이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시라와 카베르네 소비뇽 등 이 지역에 적합한 품종들을 찾아낼 수 있었죠.”
'호나타(Jonata)'라는 이름은 이 지역 원주민인 추마시(Chumash) 인디언의 언어로 '키 큰 참나무(Tall Oak)'를 뜻한다. 그 이름처럼 호나타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테루아를 와인에 담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척박한 토양 덕분에 제초제나 살충제 사용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환경 위에, 다양한 가축을 함께 키우는 다면적(polyface) 농법과 드라이 파밍(dry farming)을 적용해 최대한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특히 와인메이커 맷 디즈(Matt Dees)는 토양학(soil science)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호나타를 남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성장시킨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며, 현재 캘리포니아에서도 손꼽히는 와인메이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맷 디즈는 20년 넘게 우리와 함께해 왔는데, 제가 만난 와인메이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이에요. 사실 약 16년쯤 전, 그에게 스크리밍 이글의 와인메이커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거절했어요. 이미 스크리밍 이글은 완성된 경지의 와인이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하거나 발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이유였죠. 그는 산타 바바라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더 위대한 와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훨씬 더 즐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이 테루아의 가능성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도록, 양조 기술 역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나타와 더 힐트의 와인메이커 맷 디즈 (출처: 나라셀라)]
아르망 드 마그레와 대화하며 테이스팅을 통해 호나타의 철학과 테루아가 실제 와인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
호나타 플로르 Jonata Flor 2022
호나타가 다양한 화이트 품종 실험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한 품종은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이었다. 두 품종의 블렌딩으로 탄생한 '플로르(Flor)'는 이름 그대로 꽃(flower)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아로마가 인상적인 와인이다. 잘 익은 파인애플과 망고 같은 열대과일 향을 중심으로 멜론, 오렌지, 라임의 산뜻한 뉘앙스가 이어지며, 뒤이어 은은한 이국적인 허브 향도 느껴진다. 입안에서도 풍성한 과실 풍미가 이어지는데, 특히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뉴 프렌치 오크, 중성 프렌치 오크, 스테인리스 탱크를 각각 33%씩 사용해 숙성하며, 오크에서 비롯된 오렌지 캔디를 연상시키는 뒷맛 또한 매력적이다. 제임스 서클링(JS) 95점.
호나타 엘 데사피오 데 호나타 Jonata El Desafio de Jonata 2019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선택과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호나타의 대표 와인으로, 이름 역시 '반항(defiance)'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 94%에 소량의 멜롯과 쁘띠 베르도를 블렌딩했다. 발라드 캐년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첫 향부터 나파 밸리 스타일과 다르다. 품종 특유의 블랙 커런트 아로마는 예상할 수 있지만 그 위로 붉은 커런트와 체리의 붉은 과실 향이 겹쳐지고, 은은한 민트와 향신료 뉘앙스가 이어진다. 특히 카레아가 토양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은 포도 알이 작은데 이로 인해 응축된 과실 풍미가 느껴진다. 첫 향부터 피니시까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관능적인 흐름을 보여준다. 젭 던넉(JD) 95점, 비너스(Vinous) 97점.
호나타 토도스 Jonata Todos 2020
토도스(Todos)는 스페인어로 '모두(everyone)'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호나타 포도밭에서 재배되는 10여 가지 품종을 함께 발효하는 필드 블렌딩(field blend) 방식으로 완성한 와인이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라(57%)와 카베르네 소비뇽(24%)이 만들어내는 검은 베리, 블랙 커런트, 자두의 농밀한 과실 풍미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쁘띠 시라(10%)와 카베르네 프랑(6%)이 더하는 향신료와 말린 허브의 뉘앙스가 복합적이다. 강하지만 우아하고, 와일드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공존하며, 다채롭고도 조화로운 와인이다. 젭 던넉(JD) 95점.

[호나타와 더 힐트가 자리한 산타 이네스 밸리. 동-서 방향으로 형성된 산맥 사이로 차가운 해풍이 내륙 깊숙이 유입된다 (제공: 나라셀라)]
가장 극한의 환경에서, 더 힐트
호나타가 자리한 발라드 캐년(Ballard Canyon) AVA에서 조금 더 해안 쪽으로 향하면 산타 리타 힐즈(Sta. Rita Hills) AVA가 나타난다. 바다와 가까워 훨씬 서늘한 기후를 지닌 이곳은 샤도네이와 피노 누아의 명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맷 디즈가 오랫동안 눈여겨보던 포도밭을 스탠 크론키가 매입하며, 2008년 더 힐트(The Hilt)가 설립됐다.
그들이 선택한 포도밭은 바다에서 불과 약 20km 떨어진 북향 언덕에 위치한다. 산타 리타 힐즈에서도 해풍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지역 중 하나로, 규조토가 풍부한 척박한 토양까지 더해져 포도 재배 조건이 까다롭다. 이러한 환경에서 포도나무는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열매는 서서히 익으며 응축된 풍미를 형성한다. 실제로 산타 리타 힐즈에는 수많은 와이너리가 자리하고 있지만, 더 힐트의 포도밭이 위치한 북향 언덕 일대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특히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극한의 환경에서는 재배와 양조 모두 더욱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더 힐트는 두 개의 핵심 포도밭을 운영하는데, 핵심 포도밭인 벤트락(Bentrock)은 균형감이 돋보이는 포도를, 라디안(Radian) 포조밭에서는 거칠지만 압도적인 힘과 응축미를 지닌 포도를 생산한다. 더 힐트는 이 두 포도밭의 개성을 블렌딩해 강렬한 힘과 균형감을 동시에 갖춘 와인을 완성한다.
참고로 '힐트(Hilt)'는 칼자루를 뜻하는 단어다. 영어 표현인 'to the hilt'는 '최대한으로', '완전하게'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가장 극한의 환경에서 최고의 와인을 끌어내겠다는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더 힐트의 포도밭. 아래쪽에 하얀 카레아가 토양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출처: 나라셀라)]
더 힐트 이스테이트 샤도네이 The Hilt Estate Chardonnay 2022
하얀 복숭아와 시트러스 아로마 위로 은은한 흰 꽃 향이 겹쳐진다. 오크 숙성에서 비롯된 풍미도 느껴지지만 전면에 드러나기보다는 조용히 배경을 받쳐주는 정도다. 이는 맷 디즈가 만드는 와인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활기찬 산도와 피니시에서 길게 이어지는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특히 인상적이다. 카레아가 토양에 깊게 뿌리내린 채 차가운 해풍을 맞으며 자란 산타 리타 힐즈 샤도네이의 개성이 와인에 그대로 담겨 있다. 높은 집중도와 단단한 바디감이 느껴지며 균형감이 뛰어나다. 제임스 서클링(JS) 94점.
더 힐트 이스테이트 피노 누아 The Hilt Estate Pinot Noir 2022
피노 누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붉은 크랜베리와 체리 향 위로 잘 익은 석류의 농밀한 과실미가 느껴진다. 여기에 말린 허브와 은은한 스파이스 뉘앙스도 있다. 입안에서는 농후한 붉은 과실 풍미와 함께 매혹적인 질감이 인상적으로 펼쳐지는데, 뒤이어 이어지는 짭조름한 미네랄리티는 앞서 테이스팅한 샤도네이와 흡사하다. 화이트 와인인 샤도네이에서 느껴지는 특징이 피노 누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점은, 더 힐트 와인들이 테루아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룬과 건포도, 고소한 홍차의 뉘앙스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마실수록 더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와인이다. 제임스 서클링(JS) 94점.

[더 힐트와 호나타 와인들 (사진: 유민준)]
와인메이커 맷 디즈의 다음 말은 호나타와 더 힐트가 추구하는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의 말을 전한다.
“우리는 자연이 주는 시련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습니다. 포도나무가 겪는 고통과 고난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그 과정이 와인에 투명하게 투영될 때 비로소 그 땅의 진실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호나타와 더 힐트의 와인은 바로 그 '인내의 정수'를 병에 담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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