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모젤의 중심에서 빚은 리슬링의 정수, 프리츠 하그

독일 와인의 심장이자 리슬링의 성지로 불리는 모젤(Mosel) 지역의 전설적인 생산자, 프리츠 하그(Fritz Haag)의 오너 와인메이커 올리버 하그(Oliver Haag)가 한국을 찾았다. 프리츠 하그는 1605년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래 모젤 중부의 브라우네베르크(Brauneberg) 마을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어 전통을 지켜온 명문 와이너리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나라셀라 도운에서 진행된 마스터클래스에서 프리츠 하그의 철학과 양조 방식, 그리고 모젤 특유의 테루아를 반영한 와인들을 소개하고 함께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리츠 하그의 오너 와인메이커 올리버 하그, 제공: 나라셀라]


올리버 하그는 자신이 가문의 13대라고 소개했다. 프리츠 하그가 소유한 포도밭은 29헥타르 규모이며, 연간 약 18만 병을 생산한다. 프리츠 하그의 와인에서 느껴지는 영롱하고 순수한 미네랄리티의 근원은 지형과 토양에 있다. 포도밭은 예외 없이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한다. 그리고 블루 데보니안 슬레이트(Blue Devonian Slate)로 덮여 있다. 수억 년 전 형성된 이 편암은 잘게 풍화돼 있으며 표토의 깊이는 1-2m에 불과하다. 낮에는 태양열을 품었다가 밤에 천천히 복사하는 성질 덕분에 포도의 완숙을 돕는다. 그리고 배수가 잘 되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뿌리가 깊이 뻗어 내려가 토양의 미네랄을 흡수하게 만든다. 올리버 하그는 “이 토양이 리슬링에 미네랄리티를 불어넣는다”라고 단언했다. 


재배 품종은 97%가 리슬링이며 나머지 3%는 피노 블랑(Pinot Blanc)이다. 드라이부터 오프드라이, 귀부화된 스위트 와인까지 리슬링의 모든 스타일을 아우른다는 점도 프리츠 하그의 특징이다. 포도를 구매하는 일은 결코 없다. 오직 자가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만 사용한다. 올리버 하그는 “자체 생산 포도만 사용하는 것은 VDP(Verband Deutscher Prädikatsweingüter, 독일 최우수 와인 생산자 협회)의 규정이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철학”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올리버 하그, 사진: 김윤석]


프리츠 하그는 1910년 창립한 VDP의 창립 멤버 중 하나다. 하그 가문은 VDP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VDP의 등급 체계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와 유사한 피라미드 구조다. 올리버 하그는 VDP 등급 체계에 대해 “공식 독일 와인 법의 분류가 아니지만, 최고의 생산자인 VDP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엄격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기본적인 구츠바인(Gutswein)은 레지오날(Regional) 급, 바로 위 오르츠바인(Ortswein)은 빌라주(Village) 급 와인이다. 그 위로 프르미에 크뤼(1er Cru) 급인 에르스테 라게(Erste Lage), 그랑 크뤼(Grand Cru)와 유사한 그로스 라게(Grosse Lage)가 있다. 이 그로스 라게의 가장 우수한 구획에서 생산되는 드라이 와인에만 그로세스 게벡스(Grosses Gewächs, GG)라는 표기를 붙일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포도밭에서 나올 수 있는 GG는 단 하나뿐이다.


프리츠 하그가 보유한 VDP 그로스 라게 포도밭은 총 네 곳이다. 브라우네베르거 유퍼(Brauneberger Juffer),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존넨우어(Brauneberger Juffer-Sonnenuhr), 케스테너 파울린스호프베르크(Kestener Paulinshofberg), 몬첼러 케츠헨(Monzeler Kätzchen)이 그것이다. 모두 100% 남향이며 경사도가 최대 75%에 달하는 가파른 밭이다. 네 포도밭은 같은 지역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브라우네버르거 유퍼 포도밭 전경, 제공: 나라셀라]


브라우네베르거 유퍼(Brauneberger Juffer)는 마을 맞은편 강 건너편에 위치한 32헥타르 포도밭이다. 기원전 400년 로마 시대의 포도 압착기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04년 나폴레옹 점령 시기 모젤 최고의 밭으로 꼽히기도 했다. 철산화물을 품은 블루 데보니안 슬레이트 토양이 옅은 갈색 빛을 띠는데, 이것이 '갈색 산'을 뜻하는 마을 이름 '브라우네베르크'의 어원이 되었다. 경사가 최대 75%에 달하는 급경사면에서 섬세하고 과실미가 풍부한 미네랄 와인이 탄생한다.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존넨우어(Brauneberger Juffer-Sonnenuhr)는 유퍼 밭에 둘러싸여 있다. 크기는 10.6헥타르이며, 밭 중앙에 해시계(Sonnenuhr)가 있어 밭 이름에 존넨우어가 붙었다. 수직으로 파인 편암 절벽으로 둘러싸여 오목한 거울과 같은 효과를 내며 태양열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독특한 미세 기후를 보인다. 100년 이상 된 올드 바인들이 식재돼 있어 이 밭에서 생산한 와인은 정제된 우아함과 섬세한 피네스를 드러낸다. 올리버 하그는 이 밭을 “브라우네베르크 포도밭의 크라운 쥬얼(crown jewel, 가장 귀중한 핵심 자산)”이라고 표현했다. 


케스테너 파울린스호프베르크(Kestener Paulinshofberg)는 유퍼 서쪽에 이웃한 7.2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이다. 1886년 이미 그랑 크뤼로 분류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유퍼보다 토양이 깊으며 점토질 편암을 포함하고 있어 더 풍성한 과일 풍미와 허브 스파이스 뉘앙스를 담은 와인이 나온다. 유퍼가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준다면, 파울린스호프베르크는 섬세함 위에 약간의 파워와 무게감을 더한다. 


몬첼러 케츠헨(Monzeler Kätzchen)은 전체 면적 중 1.7헥타르의 작은 구획만 그로스 라게로 분류됐다. 고운 점판암 토양에 식재된 올드 바인이 노란 과일 향과 꽃 향기를 담은 우아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어낸다. '케츠헨'이 고양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안 참석자들이 “고양이 레이블로 내면 잘 팔릴 것 같다”는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올리버 하그의 양조 철학은 한마디로 테루아의 순수한 표현이다. 발효는 배양 효모 첨가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한다. 숙성은 와인에 따라 스테인리스 스틸과 500리터, 1000리터, 2000리터 용량의 다양한 오래된 오크 캐스크를 조합해 진행한다. 오크 뉘앙스가 와인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크고 낡은 오크만을 사용하며, 효모 앙금(lees)과 함께 오래 숙성하여 복합미와 질감을 더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로스 라게 포도밭에서 카비넷(Kabinett)이나 슈페트레제(Spätlese) 같은 프레디카츠바인(Prädikatswein) 중에서도 낮은 등급의 와인을 생산한다는 점이다. 고급 포도밭의 포도를 굳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급 와인에 사용하는 것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리버 하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프리츠 하그는 부티크 와이너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알코올 7.5도에 50년 이상 숙성 잠재력을 지닌 카비넷을 이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 수 있는 곳이 전 세계에 또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프리츠 하그의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와 아우스레제 골드캡슐(Auslese Goldkapsel) 등 상급 와인들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여러 번 100점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낮은 등급의 와인을 만드는 것은 리슬링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모젤은 북쪽에 위치한 서늘한 와인 산지이기 때문에 기온 상승이 포도 재배에 일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올리버 하그는 “단순히 따뜻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태풍, 우박, 예상치 못한 서리 같은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더 잦아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기후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수확 인원을 기존 30명에서 45명까지 늘리고, 수확 시기도 과거 10월 중순에서 9월 중순으로 앞당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올리버 하그의 아들은 독일 나헤(Nahe)의 명가 된호프(Dönnhoff)에서 실무 수업을 받고 있다. 올리버 하그 자신이 35년 전 그곳에서 일했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프리츠 하그는 다음 세대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 마스터클래스에 시음한 프리츠 하그의 와인을 소개한다.


[프리츠 하그의 와인들, 제공: 나라셀라]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크 리슬링 트로켄 J  Fritz Haag, Brauneberg Riesling Trocken J 2023

부싯돌 뉘앙스, 화이트 플라워 아로마, 라임 속껍질, 자몽, 노란 핵과 풍미에 플로럴 허브 힌트. 잔잔하게 느껴지던 미네랄 뉘앙스는 스월링 후 밀도 높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입에 넣으면 아찔한 산미를 타고 흰 자두, 서양배, 백도 풍미가 섬세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 중성적인 느낌이면서도 과일의 코어를 명확하게 담고 있다. 향은 달콤하지만 입에서는 깔끔하고 산뜻한 드라이 미감 또한 인상적이다. 유퍼와 유퍼-존넨우어 포도밭 중 GG용 구획에서 제외된 포도와 파울린스호프베르크에서 수확한 포도 일부를 블렌딩해 양조한다. 시금치나 버섯처럼 풍미가 있는 채소 요리, 가볍게 양념한 치킨과도 잘 어울린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오래된 대형 오크 캐스크를 병행해 숙성했다. 올리버 하그는 “유퍼 포도밭이 가진 우아하고 섬세한 특성을 잘 담은 와인”이라 표현했다. 알코올 12%.


프리츠 하그, 리슬링  Fritz Haag, Riesling 2024

가벼운 미네랄 힌트, 자몽과 싱그러운 핵과 풍미, 은은한 허브 뉘앙스. 입에 넣으면 기분 좋은 단맛과 둥근 질감이 편안한 미감을 선사한다. 백도, 자두 풍미와 함께 길게 이어지는 산미의 여운이 매력적이다. 브라우네베르크 리슬링 트로켄 J보다 좀 더 심플하고, 프루티한 풍미가 도드라지는 느낌. 와인 자체만 즐겨도 좋고 다양한 음식에 곁들이기도 좋은 와인이다. 브라우네베르크 주변 모젤 강에서 다소 떨어진 서늘한 위치의 급경사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했다. 그중에는 수령 50-80년의 올드 바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와인에 깊이를 더한다. 알코올 10.5%.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 리슬링 슈페트레제  Fritz Haag, Brauneberger Juffer Riesling Spätlese 2023

화려한 흰 꽃향기, 천도복숭아, 황도 같은 완숙 핵과와 서양배 풍미 뒤로 가벼운 미네랄과 꿀 같이 달콤하면서도 복합적인 뉘앙스가 가볍게 더해진다. 입에 넣으면 신선한 시트러스 산미와 싱그러운 단맛이 하모니를 이루며, 사과 콤포트, 자두 사탕 같은 풍미가 피니시까지 이어져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모든 것을 갖춘 엄친아 와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는 마을 맞은편 강 건너편에 위치한 역사적인 포도밭으로, 철산화물을 품은 블루 데보니안 슬레이트에서 자란 포도가 섬세하고 과실미 풍부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알코올 7.5%.


프리츠 하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존넨우어 리슬링 아우스레제  Fritz Haag, Brauneberger Juffer-Sonnenuhr Riesling Auslese 2024 

잔에 코를 대기도 전에 아카시아 꿀 같이 향긋하고 달콤한 풍미가 드러난다. 스월링 후엔 부싯돌 같은 미네랄, 감귤, 완숙 핵과 풍미가 더욱 화사하게 피어난다. 입에 넣으면 복숭아 콤포트 같은 풍미에 생각보다 정제된 단맛과 꼿꼿한 산미가 형성하는 견고한 구조감이 일품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미감과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는 풍미가 인상적이다. 현재도 맛있지만 몇십 년 이상의 숙성 잠재력 또한 지닌 와인. 유퍼 밭에 완전히 둘러싸인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존넨우어는 100년 수령의 고목들이 불과 1~2미터 표토 아래 암반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포도를 여러 차례 선별해 최상의 과숙 포도만 수확했다. 알코올 7%.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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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7.02 17:38수정 2026.07.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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