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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소믈리에가 선택한 알자스 와인, 진트 훔브레이트 진트

밖은 올여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이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서늘한 알자스 한 병이 놓였다.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빈호의 오너 소믈리에 김진호를 만나 그가 유독 애정을 드러내는 생산자 진트 훔브레이트(Zind-Humbrecht)의 와인을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자리가 마련된 곳은 생면 파스타로 유명한 청담동 레스토랑 쎄조니. 제철 야채와 곱창을 사용한 파스타, 제주 흑돼지 안심과 함께 '진트 훔브레이트 진트 2023(Zind-Humbrecht Zind 2023)' 와인을 즐겼다. 마침 서울 18개 매장이 참여하는 유럽연합 레스토랑 위크 기간이라, 특별 메뉴인 송아지 안심 요리도 함께 맛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육류 요리와 알자스의 화이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경험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빈호의 오너 소믈리에 김진호, 사진: 금양인터내셔날 제공]


김진호 소믈리에는 원래 요리사였다. 호주에서 경험을 쌓던 시절, 일을 마친 뒤 매니저가 건넨 한 잔의 와인에 매료돼 진로를 바꿨다. 그 뒤 호주에서 와인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지금에 이르는 기반이 되었다. 빈호는 셰프와 소믈리에가 함께 만들어가는 파인다이닝으로, 함께하는 셰프 전성빈의 '빈'과 김진호 소믈리에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빈호는 파인다이닝을 무겁지 않게, 어디서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으로 제공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김진호 소믈리에의 원칙은 명확하다. 그는 음식이 향과 맛, 질감, 산도, 감칠맛까지 켜켜이 쌓아 만든 결과물이라면, 그 위에 얹는 와인도 같은 층위의 레이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레이어가 없는 와인을 쓰면 음식과 와인이 뭉뚱그려져서, 각각을 느끼지 못하게 돼요. 음식이 죽어버리는 거죠.” 그가 자주 언급하는 또 다른 기준은 여운이다. “와인이 앞에서 잠깐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면 음식과 와인이 따로 놀아요. 입에서 질감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지 계산해서 페어링을 설계하죠.” 실제 그의 페어링 와인 리스트는 머릿속 구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후보군을 여러 번 시음하고 가지치기하듯 좁혀가며, 같은 메뉴를 스무 번 넘게 테스트한 적도 있다. 최선의 페어링을 짜기 위해 팀원들과 다양한 와인들을 여러 차례 시음하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제가 최고의 페어링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다만 저희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확신은 있습니다.”


김진호 소믈리에는 리슬링(Riesling) 품종을 특히 선호한다. 그런 그가 꼽는 알자스 최고의 생산자 중 하나가 바로 진트 훔브레이트다. 그는 알자스를 작은 지역 안에 석회암, 화산암, 편암, 이회토까지 다양한 테루아가 공존하는 드문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트 훔브레이트는 그 떼루아 하나하나의 차이를 정말 정교하게 보여주는 생산자라고 집어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건 도멘 훔브레이트 와인 특유의 질감이다. “페어링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향이나 맛보다 질감이에요. 잘 만든 알자스를 먹었을 때 느껴지는 그 질감이 음식과 농밀하게 어우러지는 질감이거든요.” 그는 빈호의 오징어 요리와 '진트 훔브레이트 리슬링 클로 뱅스불(Riesling Clos Windsbuhl)'을 페어링 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오징어를 얇게 저며 동치미 국물과 열무김치, 셀러리악 크림을 곁들인 요리였는데, 클로 뱅스불은 부드러운 질감이 입에서 길게 이어져 음식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고 한다. “진트 훔브레이트 와인들은 과일 맛만 넘치거나 오크로 덮어버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균형감이 좋고, 숙성도 약간 해서 출시하는 편이라 지금 마시기 딱 좋은 와인들이 많이 나와요.” 그가 처음 쓴 건 2019 빈티지였고, 지금은 2020 빈티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진트 훔브레이트 진트 2023,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본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과 함께 이날의 와인 '진트 2023'을 시음했다. 진트는 샤르도네(Chardonnay)와 오세루아(Auxerrois) 품종을 블렌딩 해 만드는 진트 훔브레이트의 엔트리 급 와인이다. 알자스 AOC는 샤르도네 품종을 단일 품종 와인으로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블렌드는 뱅드프랑스(Vin de France) 등급으로 출시된다. 하지만 진트는 진트 훔브레이트와 알자스 와인의 정수를 담고 있다. 와인 라벨 속 방패 문장 옆으로 'DEPUIS 1658(1658년부터)'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알자스 투르크하임(Turckheim)에 뿌리내린 가문의 긴 역사를 보여준다. 현재는 올리비에 훔브레히트(Olivier Humbrecht)와 마가렛 훔브레히트(Margaret Humbrecht) 부부가 도멘을 이끌고 있다. 올리비에 훔브레이트는 1989년 프랑스 최초로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 자격을 취득한 인물. 도멘 진트 훔브레이트는 6개 마을 40 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포도밭은 100개가 넘는 구획에 알자스의 다양한 테루아를 포함하며, 1/4 정도는 그랑 크뤼이다.


김진호 소믈리에가 진트 훔브레이트를 유독 아끼는 이유 중 하나는 수확과 양조 방식에 있다. “수확을 늦게 하고, 발효와 숙성도 천천히 하는 편이에요. 그게 부드럽고 세련된 질감을 만드는 것 같아요.” 늦수확으로 완숙된 포도가 주는 농밀함과, 서두르지 않는 양조 과정이 더해져 일반적인 생산자의 와인에서는 느끼기 힘든 질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진트 2023' 와인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졌다. 그도 2023 빈티지의 진트는 처음 맛본다고 한다. 오크 뉘앙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뉴오크를 쓰지 않고, 수확과 발효, 숙성을 천천히 가져가는 도멘 스타일 덕분이다. 처음엔 백도 같은 뉘앙스가 두드러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잔 속에서 레몬 같은 산미가 또렷하게 올라왔다. 볶은 참깨 같은 은은한 환원 뉘앙스도 감지됐으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균형이 인상적이라는 평이었다. 2023 빈티지는 오세루아 비중이 30%이며, 매 빈티지 블렌딩 비율이 조금씩 달라진다. 2018년처럼 피노 그리(Pinot Gris)를 소량 사용한 해도 있다.


'진트'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가 '진트'를 처음 시음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가격 대비 완성도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샤르도네를 만드는 퀄리티가 정말 좋아요. 이 정도 퍼포먼스면 정말 가성비 와인이죠. 이 가격대에서 블라인드로 마신다면, 이길 와인이 별로 없을 거예요. 부르고뉴 레지오날급 화이트로는 이 정도의 질감과 바디감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는 옥세루아를 단순히 샤르도네를 받쳐주는 조연 품종으로 취급하는 생산자가 많지만, 진트 훔브레이트는 오세루아 품종의 표현력 또한 잘 살려낸다는 점에서 남다르다고 짚었다. “질감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진짜 부르고뉴 스타일 아니냐고 느낄 법한데, 뉴오크도 안 쓰고 오크 토스트 향도 전혀 없어요. 맛만 넘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오크로 덮어버리는 샤르도네도 아니고, 가벼운 유질감과 구수한 맛을 적당한 밸런스로 보여줍니다.” 마지막 한마디가 압권이다. “다른 샤르도네 마셔 봐도 이런 느낌은 안 나요. 이건 진짜 이 집에서만 나오는 것 같아요.”


[진트 훔브레이트 진트 2023,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그렇다면 와인 애호가들은 '진트'를 어떻게 즐기는 게 좋을까? 와인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톱 소믈리에가 제시하는 팁은 있다. “갓 출시된 빈티지를 마셔보니, 발랄하고 크리미 한 질감이 있는 가벼운 채소 요리부터 생선회나 해산물까지 다양하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특히 광어 카르파초처럼 산미와 질감이 살아있는 조리법을 추천했다. “과일 향만 앞세우는 와인은 회의 감칠맛과 기름기를 잡아주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 와인은 그런 역할을 완벽히 해줄 수 있습니다.” 숙성이 진행된 후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견과류 뉘앙스가 드러나는 만큼, 조금 더 진한 풍미의 요리와 짝지어도 좋다는 조언이다. 실제로 그는 예전에 숙성한 빈티지의 '진트'를 진하게 우려낸 백숙 국물 같은 소스와 버섯 등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와 페어링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님들은 다들 피노 누아(Pinot Noir) 같은 레드 와인을 예상했는데, 알자스 화이트 와인이 나오니 다들 놀라셨어요. 하지만 모두 만족하셨죠. 그만큼 섬세하게 와인과 음식 양쪽의 표현이 잘 됐던 페어링이었어요.” 격식 없이 캐주얼하게 즐겨도 좋다. 그저 와인만 한 잔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식 아무거나 곁들여도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진트'는 복잡한 배경 지식 없이도 첫 모금에 만족감을 주는 스타일이에요. 알자스 화이트에 입문하기에 이보다 좋은 선택도 드물 것 같습니다.” 


오크 뉘앙스 없이도 부드러운 질감, 균형 잡힌 산미, 그리고 풍미의 밀도를 갖춘 '진트 훔브레이트 진트'는 알자스 화이트의 매력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한 병이다. 어떻게 강력 추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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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7.21 14:12수정 2026.07.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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