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지 취재] 지금 알아두면 좋은 아르헨티나 와인의 5가지 변화

[안데스 산맥, 사진: 정수지]


아르헨티나 와인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안데스, 높은 고도, 건조한 기후 그리고 말벡이다. 모두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아르헨티나 와인은 이 몇 개의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이번 취재에서 핀카 라 셀리아(Finca La Celia), 카테나 자파타(Catena Zapata), 엘 에네미고(El Enemigo), 카이켄(Kaiken)을 방문했다. 역사도 규모도 스타일도 다른 와이너리지만 변화의 방향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포도밭은 더 세밀하게 나누고, 재배는 각각의 환경에 맞게 조정한다. 말벡 이외의 품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양조에서는 힘보다 균형과 질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와이너리는 좋은 와인을 만드는 곳을 넘어 음식과 공간, 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눈여겨볼 다섯 가지 변화를 짚어봤다.


[와인 연구 자료, 사진: 정수지]


'멘도사'보다 작은 이름들이 중요해졌다

아르헨티나 와인의 중심은 여전히 멘도사다. 하지만 와인 라벨과 생산자의 설명에서 점점 더 작은 지명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코 밸리(Uco Valley) 안에서도 투푼가토(Tupungato), 투누얀(Tunuyán), 산 카를로스(San Carlos)가 다르고, 다시 구알타야리(Gualtallary), 로스 차카예스(Los Chacayes), 엘 세피요(El Cepillo)처럼 더 작은 지역으로 들어간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포도밭의 위치와 경사, 선상지의 형성 과정, 토양의 깊이와 암석 구성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다.


엘 에네미고의 그란 에네미고(Gran Enemigo) 시리즈는 이를 이해하기 좋은 사례다. 아그렐로(Agrelo), 로스 차카예스, 엘 세피요, 구알타야리에서 생산된 와인을 비교하면 같은 생산자의 카베르네 프랑 기반 와인에서도 장소에 따라 구조와 질감이 달라진다. 


카이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보였다. 비스타플로레스(Vista Flores), 로스 차카예스 등 서로 다른 산지의 특성을 구분하고, 오래된 포도밭 안에서도 토양과 포도나무 상태에 따라 관리 방법을 달리한다. 핀카 라 셀리아 역시 포도밭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토양과 포도의 차이를 추적한다.


이제 '멘도사산 말벡'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와인이 가진 차이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지역보다 작은 장소의 이름이 아르헨티나 프리미엄 와인의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포도밭, 사진: 정수지]


높은 고도보다 포도나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높은 고도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가장 잘 알려진 경쟁력이다. 그러나 이번 취재에서 생산자들이 이야기한 내용은 단순한 해발고도보다 그 환경에서 포도나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높은 곳에서는 낮과 밤의 온도 차이뿐 아니라 강한 일사량과 자외선, 바람, 낮은 습도와 수분 부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같은 우코 밸리에서도 위치와 토양에 따라 포도나무가 받는 스트레스가 달라지기 때문에 캐노피와 관개, 수확 시점을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


기후 변화는 이러한 판단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다. 강한 햇빛 아래에서 과실을 지나치게 노출시키지 않도록 잎을 남기고, 토양의 수분을 보존하면서 필요한 만큼 물을 공급해야 한다. 오래된 포도밭에서는 전통적인 재배 방식이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카이켄에서 볼 수 있었던 오래된 페르골라(pergola)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강한 햇빛으로부터 포도를 보호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카테나 자파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장소와 품종을 시험하고 있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기보다 앞으로 달라질 환경에서 어떤 포도밭과 품종이 적합할지를 찾는 것이다.


결국 고도는 출발점이다. 지금 중요한 건 주어진 환경에 포도나무를 얼마나 세밀하게 적응시키느냐다.


[오래된 아르헨티나 포도밭, 사진: 정수지]


말벡을 넘어 품종 지도가 넓어진다

말벡은 여전히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다만 좋은 아르헨티나 와인을 찾기 위해 반드시 말벡만 볼 필요는 없다. 가장 눈에 띄는 품종 가운데 하나는 카베르네 프랑이다. 특히 우코 밸리에서 카베르네 프랑은 향의 선명함과 신선함, 구조를 갖춘 프리미엄 레드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엘 에네미고의 그란 에네미고는 이러한 가능성을 국제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사례다.


보나르다(Bonarda)도 흥미롭다. 오랫동안 대량 생산용 품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오래된 포도나무와 낮은 수확량, 세심한 양조를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생산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엘 에네미고에서는 서로 다른 지역의 오래된 보나르다를 통해 품종과 장소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화이트 와인에서는 샤르도네와 세미용을 눈여겨볼 만하다. 고지대 샤르도네는 이미 아르헨티나 화이트 와인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고,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세미용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카테나 자파타가 새로운 포도밭에서 세미용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말벡 자체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과실의 농축도를 앞세운 하나의 스타일보다 산지와 토양의 차이를 보여주는 말벡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주목할 품종을 꼽는다면 말벡, 카베르네 프랑, 보나르다, 샤르도네, 세미용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새롭게 유행한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품종이 어떤 장소에서 가장 잘 표현되는지를 다시 찾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구 중인  와인, 사진: 정수지]


더 강한 와인보다 균형과 질감을 찾는다

잘 익은 과실과 풍부한 농축도는 아르헨티나 와인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충분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 덕분에 완숙한 포도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여기에 강한 추출과 새 오크가 더해진 스타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금은 그 장점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핀카 라 셀리아는 좋은 사례다. 수확기가 가까워지면 일주일에 두 차례 화학 분석을 실시하고 포도밭에서 직접 포도의 맛과 성숙도를 확인한다. 안토시아닌과 타닌의 변화도 함께 추적해 수확 시점을 결정한다. 목표는 단순히 높은 당도나 완숙한 과실이 아니라 원하는 색과 타닌의 균형을 얻는 데 있다. 


추출도 같은 맥락에서 달라진다. 포도밭의 차이를 찾아냈더라도 양조장에서 지나치게 강하게 추출하면 서로 다른 구획에서 얻은 포도의 개성이 비슷해질 수 있다. 그래서 발효와 침용 과정에서도 타닌의 양뿐 아니라 질감을 중요하게 본다.


오크 역시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콘크리트, 큰 용량의 용기, 사용한 배럴 등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과실과 장소의 성격을 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 결과 최근의 프리미엄 아르헨티나 와인에서는 농축도와 함께 신선함, 긴장감, 섬세한 타닌과 긴 여운이 중요한 품질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작품이 함께 전시 중인 아르헨티나 와이너리 숙성실, 사진: 정수지]


와이너리가 여행의 목적지가 된다

병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분명히 보였다. 특히 카테나 자파타와 엘 에네미고의 경우, 와이너리를 방문한다는 것이 단순히 셀러를 둘러보고 와인을 시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 됐다.


카테나 자파타의 피라미드형 와이너리는 오래전부터 멘도사를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여기에 미식이 더해졌다. 와인과 음식을 함께 경험하도록 설계된 공간은 와이너리가 자신의 철학과 연구, 포도밭을 방문객에게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엘 에네미고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더욱 흐려진다. 와이너리 곳곳에 이야기와 예술적 요소가 배치되어 있고, 레스토랑에서는 음식과 와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방문객은 와인을 시음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생산자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멘도사는 이미 세계적인 와인 여행지지만, 최근의 변화는 시설을 더 화려하게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와인, 음식, 건축, 포도밭과 이야기를 하나의 경험으로 묶는 방식이 정교해지고 있다. 이는 프리미엄 와인을 알리는 방법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와인이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것만큼 소비자가 직접 산지를 찾아와 땅과 음식,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아르헨티나 와인 연구실, 사진: 정수지]


더 자세히 보기 시작한 아르헨티나

이번에 방문한 네 와이너리는 서로 많이 달랐다. 핀카 라 셀리아에서는 포도밭과 수확, 타닌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카테나 자파타에서는 연구와 새로운 포도밭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엘 에네미고에서는 장소와 오래된 품종을 새롭게 해석하는 힘이, 카이켄에서는 서로 다른 산지와 재배 방식에 맞춰 와인을 바꾸어가는 과정이 보였다.


그런데 서로 다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 지점에서 만난다. 예전보다 더 작은 지역을 보고, 같은 포도밭 안의 차이를 찾는다. 높은 고도를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환경에서 포도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핀다. 말벡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다른 품종의 가능성을 찾으며, 충분히 익은 포도를 얻은 뒤에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


안데스도, 햇빛도, 말벡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읽는 방식이다. 지금 아르헨티나 와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더 높은 곳이나 더 강한 와인을 향하는 경쟁이 아니다. 이미 가진 땅과 포도나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의 작은 차이를 와인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다. 아르헨티나 와인의 질문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정교해지고 있다.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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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9.15 12:56수정 2026.09.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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