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안티 클라시코 존 남동쪽 경계에 위치한 펠시나 와이너리에 올라서면 언덕 위로는 광활한 숲이 펼쳐지고, 사면에는 포도나무가, 그 사이에는 올리브나무가 자리한다. 마치 넓은 자연 생태계 안에 와이너리가 들어선 듯한 풍경이다.

[키안티 클라시코 빈야드 풍경, 출처: 펠시나]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과거 피렌체 가문의 사냥용 영지였다. 1966년 도메니코 포지알리(Domenico Poggiali)가 인수한 뒤 오늘날의 가족 와이너리로 이어졌지만, 숲과 농경지가 함께 존재하는 풍경은 여전히 농장의 중요한 일부다. 주변 숲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경사진 지형, 자연 통풍과 맞물려 하나의 테루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숲이 포도 재배에 무조건 낭만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포도밭 울타리를 살펴보며 야생동물에 관해 묻자 관계자는 먼저 사슴을 이야기했다. “사슴은 익은 포도뿐 아니라 개화기의 꽃까지 먹어요. 꽃이 없어지면 여름에 포도도 없지요.” 이곳에서는 악명 높은 멧돼지도 문제다. 당도 높은 포도를 찾아오기 때문에 수확철에는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 사냥꾼이 직접 부지를 돌며 개체 수를 관리한다고 했다. 생물다양성은 지속가능한 농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실제 와이너리에서는 그 생태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비용도 있다.

[창문에 새를 막기 위한 네트가 설치된 펠시나 와이너리 건물, 사진: 엄경은]
산지오베제, 같은 품종으로 내놓은 서로 다른 답
포도밭을 둘러보던 중 길가의 검은 수탉 표식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상징을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 특별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관계자가 길 양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 길이 경계입니다. 왼쪽은 키안티 클라시코, 오른쪽은 키안티 콜리 세네시입니다. 경계가 우리 부지 안을 지나가지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원산지 이름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가 지나온 두 구역을 이렇게 비교했다. “키안티 클라시코 쪽은 돌이 많고, 콜리 세네시 쪽은 모래와 점토 비율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이쪽 산지오베제는 과실이 풍부하고 비교적 일찍 즐기기 좋은 성격을 보입니다.”
그 차이는 키안티 클라시코 구역의 란치아(Rancia)에 도착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해발 약 400~420m에 자리한 란치아는 경사가 가파르고, 알베레세(Alberese)와 갈레스트로(Galestro)가 섞인 돌 많은 토양이 특징이다. 포도의 성숙도 비교적 천천히 진행된다. 펠시나는 이 포도밭의 산지오베제가 다른 구획과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을 보인다고 판단해 1983년부터 별도로 병입하기 시작했다.
조금 뒤 만난 포조 알 솔레(Poggio al Sole)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름 그대로 '햇빛 아래의 언덕'.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을 길게 받아 포도가 비교적 빠르게 익고, 펠시나에서도 수확이 이른 구획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이곳의 산지오베제는 콜리 세네시 쪽 두 포도밭의 산지오베제와 함께 폰탈로로(Fontalloro)를 구성한다. 폰탈로로가 DOCG가 아닌 토스카나 IGT로 출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정에 못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원산지 구역의 산지오베제를 한 와인에 담기 때문이다. 당시 양조가 프랑코 베르나베이(Franco Bernabei)는 한 농장 안에서도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산지오베제에 주목했다. 그 차이를 한쪽에서는 분리해 보여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합해 보여주려 한 것이다.
란치아가 하나의 특정 포도밭을 좁고 깊게 보여주는 산지오베제라면, 폰탈로로는 서로 다른 토양과 미세기후에서 자란 산지오베제를 엮어 농장의 더 넓은 풍경을 보여주는 와인이다.

[사진: 엄경은]
기후변화가 재배의 '정답'을 바꾸다
마침 방문한 날은 한여름의 더위가 유난히 가혹했다. 일부 송이에서는 강한 햇빛에 노출된 흔적이 보였고, 말라 쪼그라든 포도알도 눈에 띄었다. 산지오베제는 비교적 늦게 익는 품종이다. 과거라면 충분한 햇빛과 긴 성숙 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기온이 상승한 기후에서는 충분히 익히는 것 못지않게, 너무 빠르게 익지 않도록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란치오의 예상 수확일을 묻자 그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답하면서도, 지금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포도를 강한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는 잎을 벽처럼 남겨 그늘을 만들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여름이면 송이 주변의 잎을 제거해 햇빛을 더 받도록 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캐노피를 더 남겨 직사광선과 일소로부터 포도를 보호한다.
물론 잎을 무조건 많이 남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잎은 그늘을 만들지만 동시에 증산으로 물을 소비한다. 특히 건조한 해에는 송이를 보호할 만큼의 잎을 유지하면서도 포도나무의 수분 소비를 지나치게 늘리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토양 관리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났다. 예전에는 5월 무렵 피복작물을 베어 잘게 만든 뒤 토양에 섞었다. 그러나 2017년 극심한 가뭄을 겪은 뒤 접근 방식을 바꿨다. 지금은 피복작물을 토양 속에 넣기보다 밀어 눕혀 지표면에 카펫처럼 남긴다. 그는 이렇게 만든 피복층이 토양을 보다 서늘하게 유지하고 수분 손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는 미래가 아닌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펠시나의 셀러, 사진: 엄경은]
오래된 마구간이 양조법을 결정하다
포도밭에서 돌아와 셀러로 들어가자 눈길을 끈 것은 대형 오크통에 적힌 숫자였다. 65헥토리터, 66헥토리터, 69헥토리터.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달랐다. 와인마다 특별한 숙성 효과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른 용량일까.
답은 뜻밖에도 건물에 있었다. “여기는 원래 마구간이었습니다. 기둥 사이의 간격이 달라 통도 각각 맞춰 만들었죠.” 말이 머물던 공간에 와인통이 들어왔으니, 통에 맞춰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오래된 건물의 틈에 맞춰 통을 제작한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어중간한 숫자는 복잡한 양조 공식이 아니라 기둥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안쪽에서도 서로 다른 용량의 통이 이어졌다. 그는 이 대형 슬라보니아 오크통에서 기본 키안티 클라시코를 숙성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리제르바에는 500리터 토노를 사용하고, 그란 셀레치오네와 폰탈로로에는 더 작은 배럴을 사용하는 등 와인의 성격에 따라 숙성 용기를 달리한다. “레드 와인에 쓰는 토노와 바리크는 매년 새 오크를 약 20%씩 구입합니다. 모두 미디엄 토스팅을 사용하고, 와인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밸런스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구간이었던 이곳은 1832년에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셀러의 두꺼운 벽은 온도를 유지하기에 훌륭하고, 천장의 미세한 곰팡이는 적절한 습도를 암시했다. 반면 발효용 스테인리스 탱크가 있는 시설에서는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두었다고 했다.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현재의 생산 방식에 맞춰 계속 쓰임을 찾아가는 공간과 도구에 가까웠다.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빈 산토 숙성실, 사진: 엄경은]
마지막으로 지붕 바로 아래의 빈 산토(Vin Santo) 숙성실로 올라갔다. 100리터 남짓의 작은 카라텔로(caratello)가 놓인 공간은 계절의 온도 변화를 그대로 받는 창문 옆이었다. 포도는 먼저 오래된 란치아 농가에서 자연적으로 건조한 뒤 압착해 카라텔로에 담는다. 드라이 와인과 달리 숙성 중 줄어든 와인을 보충하지 않고, 작은 통 안에서 천천히 농축과 산화적 숙성이 진행되도록 기다린다. 그는 한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2023년산입니다. 2030년에 병입할 겁니다.”
펠시나는 트레비아노와 말바시아, 산지오베제로 빈 산토를 만들며, 매년은 아니지만 산지오베제만으로 극소량의 오키오 디 페르니체(Occhio di Pernice)도 생산한다. '자고새의 눈'이라는 이름처럼 붉은빛을 띠는 이 희귀한 와인은 최소 10년 이상 카라텔로에서 숙성된다.
포도밭의 테루아가 와인의 출발점을 만든다면, 빈 산토의 개성은 수확 이후의 시간 속에서 한 번 더 만들어진다. 포도를 말려 과실과 당을 농축하고, 계절의 온도 변화를 고스란히 겪는 작은 카라텔로에서 수년에 걸쳐 산화적 숙성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농밀한 단맛과 산화 숙성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풍미는 토스카나에서 전통적으로 단단한 아몬드 과자인 칸투치(cantucci)와 함께 즐겨왔다.

[펠시나 스푸만테 브뤼, 사진: 엄경은]
시음에서 가장 뜻밖이었던 것은 스파클링이었다. 펠시나 하면 산지오베제 100%의 드라이 레드 와인을 먼저 떠올리지만, 산지오베제는 이곳의 스파클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날 시음한 스푸만테 브뤼(Spumante Brut)는 산지오베제 60%,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각각 20% 사용했다. 산도는 예상보다 선명했다. 비교적 중성적인 과실 톤 위로 잘 익은 과실과 꿀을 연상시키는 풍미가 겹쳤고, 전체적인 질감도 부드러워 접근성이 높았다. 서늘한 지역의 스파클링보다 폭넓은 음식과 매칭하기에도 흥미로워 보였다.
이어서 베라르덴가 키안티 클라시코(Berardenga Chianti Classico) 2024가 놓였다. 펠시나의 여러 산지오베제 가운데 과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비교적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한다. 앞서 마구간 셀러에서 보았던 오래된 대형 오크통이 바로 이런 와인을 위한 것이었다.

[펠시나 키안티 클라시코 베라르덴가 2024, 사진: 엄경은]
마지막으로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치오네 란치아 2023과 토스카나 IGT 폰탈로로 2023이 나란히 놓였다. 그는 다시 지도를 펼쳐 란치아와 폰탈로로에 들어가는 포도밭을 짚었다. 포도밭에서 보았던 풍경이 이제 잔 속의 차이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폰탈로로에서는 철분과 요오드를 연상시키는 짭짤한 뉘앙스와 짙은 과실, 허브가 겹치며 보다 넓고 복합적인 인상을 보였다. 반면 란치아는 타르트한 레드 체리와 선명한 산도가 중심을 잡고, 타닌의 구조가 보다 또렷하게 느껴졌다.
두 와인 모두 아직 어린데도 타닌의 질감이 예상보다 매끄러웠다. 그 점이 의외라고 하자 그는 오히려 2023년이 쉽지 않은 빈티지였다고 설명했다. 봄철 많은 비로 포도나무가 어려움을 겪었고 수확량도 줄었지만, 남은 송이에서는 좋은 농축도를 얻었다는 것이다. “란치아와 폰탈로로는 좋은 빈티지에는 20~25년까지 숙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23년은 그렇게 오래 기다리기보다 비교적 일찍 즐기기 좋은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펠시나 폰탈로로 2023, 펠시나 키안티 클라시코 그란 셀레치오네 란치아 2023, 사진: 엄경은]
대표 와인을 앞에 두고 숙성 잠재력을 과장하기보다 그해의 한계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펠시나에서 반복해서 마주한 것도 이런 태도였다. 화려한 현대식 설비나 새로운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오래된 포도밭과 건물, 숲과 토양이 가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해의 기후에 맞춰 재배와 양조를 조금씩 조정한다. 마구간의 기둥 사이에 맞춘 오래된 통도, 2017년 이후 달라진 피복작물 관리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펠시나의 전통은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켜온 장소를 매년 새롭게 읽는 데 가까웠다. 뽐내지 않아도 본연의 멋이 있는 장소와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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