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가문의 유산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아그라파 아비즈와 도멘 루이스 도리

오랜 가문의 역사를 물려받았지만 과거의 이름에 머물지 않은 두 생산자가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지난 9월 9일 서울 한남동 보보스 한남에서 아그라파 아비즈(Agrapart Avize)와 도멘 루이스 도리(Domaine Louis Dorry)의 한국 론칭을 알리는 시음회가 열렸다. 수입사 레뱅이 마련한 이 자리에서는 아그라파 아비즈의 샴페인 3종과 루이스 도리의 마코네(Mâconnais) 화이트 와인 4종이 소개됐다.


[왼쪽부터 도멘 루이스 도리와 샴페인 아그라파 아비즈, 제공: 레뱅]


아그라파 아비즈는 1894년부터 이어진 샴페인 명가에서 갈라져 나온 새로운 하우스로 파브리스 아그라파(Fabrice Agrapart)가 맡고 있다. 루이스 도리는 7대째 포도를 재배해 온 농가에서 시작된 젊은 도멘으로 가문의 막내인 루이스-폴 도리(Louis-Paul Dorry)가 이끈다. 배경은 다르지만 두 브랜드 모두 가문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양조 방식과 유통 원칙을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서로 다른 지역과 품종을 다루는 이들의 와인에서는 소규모 생산과 최소 개입,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가업을 잇겠다는 태도가 나란히 읽힌다.


아비즈에서 다시 시작한 파브리스 아그라파

아그라파 가문의 샴페인 역사는 1894년 아르튀르 아그라파(Arthur Agrapart)가 코트 데 블랑(Côte des Blancs)의 그랑 크뤼 마을 아비즈(Avize)에 메종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1950~1960년대에는 그의 손자인 피에르 아그라파(Pierre Agrapart)가 포도밭을 넓혀 오늘날 하우스의 기반을 다졌다.


4대인 파스칼(Pascal)과 파브리스(Fabrice)는 1984년부터 함께 하우스를 운영했지만, 양조와 경영에 관한 방향이 달라지면서 2020년 각자의 길을 택했다. 파스칼은 기존 아그라파 하우스와 싱글 빈야드를, 파브리스는 꼬뜨 데 블랑의 그랑크뤼 밭 5.5ha를 물려 받았다. 자신의 뿌리가 있는 아비즈에 새 하우스를 세우고 싶었던 파브리스는 양조장을 조성할 적합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와리(Oiry)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2023년 겨울 아비즈 시청으로부터 새로운 공간에 관한 제안을 받으면서 계획을 변경했고, 와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아비즈로 옮겨 새로운 샴페인 하우스 '아그라파 아비즈(Agrapart Avize)'를 세우게 됐다.


아그라파 아비즈가 제시하는 세 가지 가치는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Amour), 우정의 아미티에(Amitié), 행동과 실천을 뜻하는 악시옹(Action)이다. 세 단어의 머리글자인 세 개의 'A'를 결합해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으며, 이 로고는 병에도 각인돼 아그라파 아비즈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포도밭에서 병입과 출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함께하고, 생산자와 직원, 재배 농가, 파트너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아그라파 아비즈는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파브리스의 실험적인 면모를 전면에 내세운다. 포도 압착부터 양조와 병입까지 한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하고, 향후 호텔과 레스토랑, 와인 클럽, 전시 공간을 갖춘 와인 문화 복합 공간으로 확장할 계획도 세웠다. 현대미술가 카르스텐 휠러(Carsten Höller)가 디자인에 참여한 1단계 공간은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공간 구상과 마찬가지로 파브리스의 샴페인에도 가문의 전통 위에 새로운 감각을 더하려는 방향이 반영돼 있다. 그는 아그라파 가문이 이어온 장인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창의성과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토착 효모를 이용한 발효와 오크 숙성, 젖산 발효, 무여과 등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바탕으로 각 와인에 적합한 기술을 세밀하게 적용해 아그라파 아비즈만의 개성을 표현한다.


[샴페인 아그라파 아비즈, 제공: 레뱅]


아그라파 아비즈 아토마 P23  Agrapart Avize Atoma P23

아그라파의 DNA를 담은 샴페인이다. 2020년에 시작한 퍼페추얼 리저브(Perpetual Reserve)를 해마다 새로운 빈티지와 블렌딩해 만드는 샤르도네 100% 블랑 드 블랑이다. 아비즈, 크라망(Cramant), 오제(Oger), 와리(Oiry), 르 메닐 쉬르 오제(Le Mesnil-sur-Oger), 베르튀(Vertus), 베르제르 레 베르튀(Bergères-lès-Vertus) 등 7개 크뤼의 포도를 블렌딩하고, 퍼페추얼 리저브 20%를 더했다. 도사주 0g/L의 브뤼 나튀르로 생산량은 약 2만 병이다. 시트러스와 레몬 제스트, 잘 익은 사과가 선명하고, 초키한 미네랄과 염분감이 길게 이어진다. 크리미한 질감에 브리오슈와 토스트의 뉘앙스가 겹치지만 전체 인상은 팽팽하고 정교하다.


아그라파 아비즈 아뫼니아 VME23  Agrapart Avize Ameunia VME23

아그라파 역사상 처음 선보인 피노 뫼니에 100% 샴페인이다. 발레 드 라 마른(Vallée de la Marne)의 프리미에 크뤼인 마뢰유 르 포르(Mareuil-le-Port)와 페스티니(Festigny)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70%와 프렌치 오크 드미뮈(Demi-muid) 30%에서 양조하고 숙성했다. 도사주는 0g/L, 생산량은 약 1만1000병이다. 밝은 골드 컬러와 섬세한 기포가 돋보인다. 라즈베리와 산딸기, 붉은 사과, 배의 생동감 있는 과실 향에 흰 꽃과 들꽃의 은은한 뉘앙스에 입안에서는 피노 뫼니에 특유의 풍부한 과실 풍미와 둥근 질감이 두드러지며, 효모와 600리터 용량의 드미-뮈 숙성에서 비롯된 브리오슈와 페이스트리, 토스트, 헤이즐넛 풍미가 복합미를 더한다. 질감은 크리미하지만 산도는 활기차다.


아그라파 아비즈 암포라 2021  Agrapart Avize Amphora 2021

오제 그랑 크뤼의 샤르도네 100%로 만든 극소량 뀌베다. 조지아의 전통적인 암포라 양조에서 영감을 얻어 테라코타 용기에서 포도알을 가볍게 침용하고 자연스러운 미세 산화를 유도했다. 산소와의 접촉은 활용하면서 오크 향은 배제해 샤르도네의 순수함과 오제의 미네랄을 표현하려 했다. 파인 리에서 48~60개월 숙성하며 도사주는 0g/L다. 출시 전 파브리스가 병마다 향을 확인해 선별하며 생산량은 단 90병에 그친다. 레몬 필과 노란 사과 위로 흙과 스파이스의 뉘앙스가 나타나고, 입안에서는 샤르도네 특유의 정교한 산도와 미네랄리티가 중심을 이루며, 리 숙성에서 오는 깊이와 질감이 더해진다. 브뤼 나튀르의 드라이하고 단단한 구조와 함께 정교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도멘 루이스 도리, 제공: 레뱅]


7대를 이어온 포도 농가에서 출발한 루이스 도리

도멘 루이스 도리는 부르고뉴 남부 마코네의 작은 마을 뷔시에르(Bussières)에 자리한다. 도리 가문은 7대에 걸쳐 이곳에서 포도와 가축을 함께 길러왔지만, 오랫동안 수확한 포도의 대부분을 다른 생산자에게 판매했다. 현재 도멘을 이끄는 막내 루이스 도리는 2002년 다바예(Davayé) 와인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뒤 올리비에 메를랭(Olivier Merlin), 도멘 파리고(Domaine Parigot), 도멘 데 되 로슈(Domaine des Deux Roches) 등에서 약 6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2006년 아버지의 밭 일부에 포도나무를 심었고 2010년 첫 빈티지를 내놓았다.


도멘의 재배 면적은 3.7헥타르에 불과하다. 포도밭에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가능한 범위에서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적용한다. 포도는 공압 프레스로 네 시간에 걸쳐 압착하고, 무황 상태에서 약 12시간 정적 침전한 뒤 탁한 상태의 주스를 오크 배럴로 옮긴다. 효모를 넣지 않은 자연 발효를 통해 약 8개월 간의 긴 알코올 발효를 시작하고, 말로락틱 발효도 함께 진행된다. 병입 전까지 아황산염을 넣지 않고 콜라주 없이 가벼운 여과만 진행한다.


도멘의 석조 셀러는 과거 클뤼니(Cluny) 수도회가 소유했던 14세기 건축물이다. 오래된 공간에서 숙성되는 와인은 마코네의 전형적인 풍성함보다 긴장감과 미네랄을 앞세운다. 네 가지 뀌베는 모두 샤르도네 100%이지만 포도나무의 수령과 밭의 토양, 숙성 용기에 따라 서로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도멘 루이스 도리 노뜨르 빌라주  Domaine Louis Dorry Notre Village 2024

마콩 뷔시에르의 수령 9년 샤르도네로 만든 엔트리 프리미엄 와인으로, 도멘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보여준다. 콘크리트 에그 탱크 20%, 에나멜 탱크 60%, 오크 배럴 20%를 사용해 깨끗하고 순수한 과실 풍미를 표현했으며 생동감과 미네랄리티가 돋보인다. 젖은 낙엽과 허브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리스 향에 레몬과 향신료, 스타프루트 향이 이어진다. 밝고 유연한 질감과 은은한 염분감이 느껴지며 피니시는 라임을 연상시킨다.


도멘 루이스 도리 레 꼴롱주  Domaine Louis Dorry Les Collonges 2023

도멘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으며, 마콩 밀리 라마르틴(Milly-Lamartine)의 점토석회암 토양에서 자란 수령 17년 샤르도네를 사용한 싱글 빈야드 와인이다. 토착 효모만으로 오크 배럴에서 자연 발효하고 숙성해 풍미가 풍부하고 복합미의 깊이가 느껴진다. 라임과 얇게 썬 사과의 신선한 향에 크리미한 페이스트리의 뉘앙스가 겹친다. 생기 있는 산도와 과실의 집중도가 균형을 이루고, 피니시의 은은한 페놀릭이 복합미를 더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도멘 루이스 도리 엉 프로롤  Domaine Louis Dorry En Prole 2023

마콩 뷔시에르의 석회암 토양에서 자란 수령 92년 올드 바인에서 생산한다. 도멘의 오래된 포도나무가 지닌 집중도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뀌베다. 100% 말로락틱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따뜻한 토스트와 헤이즐넛, 브리오슈 향에 레몬 등의 시트러스한 과일이 어우러진다. 질감은 풍부하지만 직선적인 산도가 와인의 중심을 곧게 세우며, 미네랄리티와 밝은 염분감과 긴 여운으로 이어진다. 구조감과 깊이가 풍부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우아해지는 숙성잠재력을 갖췄다.


도멘 루이스 도리 라 마레쇼드  Domaine Louis Dorry La Maréchaude 2023

푸이퓌세 프리미에 크뤼에 자리한 0.5586헥타르의 밭에서 수령 74년의 샤르도네를 수확해 만든 플래그십 뀌베로 도멘의 섬세함을 가장 잘 드러낸 와인이다. 프리미에 크뤼 등급의 뛰어난 점토석회암 토양의 테루아를 담아냈다. 진한 토스트와 페이스트리, 파이 크러스트의 향에 응축된 과실이 겹친다. 미디엄에서 풀 바디 스타일로 선명한 산도와 미네랄리티, 부드러운 풍미와 복합미를 지니고 있으며 길고 풍성한 여운을 남긴다. 구조감이 우아하고, 풍성하고 깊은 질감을 보이며, 선명한 산도와 긴 여운이 숙성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도멘 루이스 도리와 아그라파 아비즈 한국 론칭 시음회, 제공: 레뱅]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운영 원칙

두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해외와 마찬가지로 리테일 판매보다는 와인을 제대로 설명하고 서비스할 수 있는 업장을 중심으로 유통할 예정이다. 아그라파 아비즈는 호텔과 레스토랑, 바 등의 채널을 원칙으로 삼는다. 루이스 도리의 노트르 빌라주는 글라스 판매와 레스토랑 리스트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레 꼴롱주와 엉 프로롤, 라 마레쇼드는 사전 예약 방식의 알로케이션으로 공급한다.


아그라파 아비즈의 샴페인이 파브리스의 새로운 시도와 양조적 실험을 보여준다면, 루이스 도리의 와인은 가까운 거리 안에서도 밭과 포도나무 수령에 따라 달라지는 마코네의 세밀한 테루아를 드러내며 각자의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이 두 생산자를 단순히 유명 가문의 이름이나 희소한 생산량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이들 두 사람에게 가업이란 완성된 형태의 유산이 아닌, 자신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쓰고 있는 현재형의 작업일지 모르겠다.

프로필이미지정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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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9.23 11:17수정 2026.09.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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