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못한 사람에 대해 쓰는 일은 조심스럽다. 그런데 와인에서는 자료와 와인의 스타일을 통해 그것이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2024년 5월, 소노마 윈저(Windsor)의 듀몰(DuMOL) 와이너리를 방문해 여러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와인을 만든 사람의 스타일, 아니 그 포도밭과 어우러진 전체적인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앤디 스미스(Andy Smith).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양조를 배우고, 캘리포니아 소노마의 안개 속에 자리를 잡은 사람이다.

[앤디 스미스, 출처: https://dumol.com/]
듀몰은 1996년 사업가 케리 머피(Kerry Murphy)와 레스토랑 경영자 마이클 벌랜더(Michael Verlander)가 세웠다. 이름은 창업자의 아이들인 덩컨(Duncan)과 몰리(Molly)에서 따왔다[1]. 초기에는 더튼 랜치(Dutton Ranch)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1999년 앤디 스미스가 양조자 겸 재배 책임자로 합류하면서 집의 문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2005년 공동 소유주가 되었고, 2015년 동료와 함께 와이너리를 완전히 인수했다[1][2]. 와이너리 파사드에 걸린 엉겅퀴 문장은 스코틀랜드의 국화다. 만든 사람이 바뀌어도 집의 얼굴에는 그가 태어난 곳의 정체성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스승들의 이름이다. 뉴질랜드 링컨 대학에서 양조학을 마친 뒤 마틴버러의 드라이 리버(Dry River)에서 닐 매컬럼에게, 소노마의 리토라이(Littorai)에서 테드 레몬에게, 그리고 폴 홉스(Paul Hobbs)의 보조 양조자로 일하며 배웠다[3]. 캘리포니아에서는 특히 양조자들의 이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폴 홉스는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쭉 따라가보면 이들은 대부분 서늘한 기후의 피노 누아를 절제된 손으로 다루는 사람들이다. 로버트 파커가 그를 헬렌 털리, 마크 오베르, 미셸 롤랑과 나란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컨설턴트'로 꼽은 것은 그 배움의 결과일 것이다[3].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시 시음실에서 내가 더 자주 들은 이야기는 양조가 아니라 밭이었다.

[듀몰의 빈야드 풍경, 출처: https://dumol.com/]
듀몰은 지금 스물다섯 곳 안팎의 밭에서 포도를 받는다. 자사 소유가 일곱 구획이고, 대부분이 와이너리에서 10마일 안에 있다. 나머지는 더튼, 찰스 하인츠(Charles Heintz), 카네로스의 하이드(Hyde)와 허드슨(Hudson) 같은 이름난 재배자들의 밭이다[4][5]. 유명한 밭의 포도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지만, 다른 것은 그 목록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마다 몇 곳이 빠지고 몇 곳이 새로 들어온다. 지금도 도착하는 듀몰의 와인 출시 리스트를 보면 밭이 계속 바뀌고 있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느낀다. 스미스가 직접 언덕을 돌며 구획을 고르고, 마음에 드는 밭이 나오면 장기 임차로 들어가 가지치기부터 수확까지 자기 팀이 관리한다[4].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양조자로 이름을 얻은 사람이 정작 자기 일의 절반을 밭을 찾는 데 쓰고 있다는 것. 이 점이 그를 다른 유명 양조자들과 갈라놓는 지점인 듯하다.
그가 밭을 다루는 방식도 밭을 고르는 방식만큼 집요하다. 그린 밸리(Green Valley)의 브레세이 에스테이트(Bressay Estate)는 2004년과 2005년에 심었는데, 에이커당 3,630그루, 헥타르로 치면 9,000그루에 이르며 군집이 매우 빽빽하다. 시음 당시에도 담당자가 이 부분을 강조했다. '한 그루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나무가 많으면 그루당 수확은 줄고 균형은 저절로 잡힌다는 뜻이다. 인증은 받지 않았지만 농사는 유기농으로 하고 있다[4].

[듀몰 웨스터 리치 피노 누아, 출처: https://dumol.com/]
이러한 스타일은 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스미스는 지난 이십 년 동안 듀몰의 스타일을 조금씩 옮겨 왔다고 한다. 크고 잘 익고 과일이 앞서던 초기의 와인에서 산미가 밝고 추출이 덜한 쪽으로. “너무 익기 전에 따는 편이 좋다”는 그의 말은 캘리포니아 피노에 대한 통념과는 거리가 있다[3]. 전체 송이는 열에 하나 남짓만 넣고, 어려운 해에는 조금 늘린다. 당시 마신 웨스터 리치(Wester Reach) 피노 누아 2022는 붉은 체리와 숲 바닥, 약간의 줄기 향이 서늘하게 이어졌고, 그의 아이 이름을 단 핀(Finn) 피노 누아 2022는 검붉은 과일 위로 향신료와 장미가 얹히면서도 결이 촘촘했다. 와일드 마운틴사이드(Wild Mountainside) 시라 2022는 검은 후추와 올리브가 무게 대신 향으로 말했고, 나파 쿰스빌의 미티어 빈야드(Meteor Vineyard) 카베르네 소비뇽 2017은 피노를 만드는 손이 만든 카베르네답게 힘보다 선이 살아 있었다. 아홉 잔이 각기 다른 밭에서 왔는데도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2026년에 만난 2023년 웨스터 리치는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보다 화사하면서도 깊이 있는 체리의 터치와 상대적으로 낮은 줄기의 느낌이 어우러지며 복합미가 돋보였다.
와인 이름에서도 그의 자리가 읽힌다. 핀, 라이언, 에이든 같은 이름은 그의 아이들에게서 왔고, 브레세이나 웨스터 리치 같은 이름은 스코틀랜드의 지명과 어법을 빌렸다[3][4]. 자기 이름을 병에 올리는 대신 가족과 고향의 이름을 올리고, 그 아래에는 늘 밭 이름과 산지를 적는다. 양조자가 가장 앞에 서는 캘리포니아의 오랜 관행 속에서, 이 사람은 스스로를 밭과 가족 사이 어딘가에 놓아 둔 듯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생산자의 뜻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땅이라 함은 내가 태어난 곳과 살아온 곳,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나도 고향 부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깊은 향수를 느껴 여기저기 고향의 흔적을 남겨두려 하지만 쉽지 않다. 수도권에 있으면서도 늘 마음은 고향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땅에 대한 이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생산자의 마음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밭을 고르는 눈, 밭을 다루는 손, 그리고 너무 익기 전에 따는 결단. 이 세 가지가 잔마다 같은 결로 반복되고 있었다. 언젠가 그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와인 이야기보다 먼저 올해는 어느 밭이 목록에서 빠지고 어느 밭이 새로 들어왔는지를 묻고 싶다. 그 대답이 그해의 듀몰을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1] The PinotFile (Prince of Pinot), "DuMOL" 생산자 소개 및 "DuMOL: Scottish Thread Runs Through"
[2] Wine Industry Advisor, "DuMOL Celebrates 25 Seasons of Winegrowing" (2022)
[3] DuMOL 공식 홈페이지, dumol.com/about (Andy Smith 소개)
[4] wineanorak.com, "Russian River Valley, Sonoma, California (5): DuMol" (2024)
[5] Polaner Selections / DuMOL 자료, 협업 재배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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