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다이닝

[와인 & 푸드] 트러플 헌터의 와인

[트리풀라우와 그의 두 마리 개, 사진: 정수지]


작년 12월 초, 차가운 알프스의 공기가 내려앉은 숲에서 트러플 헌터인 트리풀라우(Trifulau)와 그의 두 마리 개를 만났다. 나이 든 알리는 복슬거리는 흰 털을 지녔는데, 입 주변만 짙은 밤색으로 물든 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커다란 바둑무늬를 지닌 알리의 어린 동생은 쉴 새 없이 가쁜 숨을 내쉬며 트리풀라우 주변을 맴돌았다.


[트러플이 자라는 숲, 사진: 정수지]


햇빛이 겨우 비껴 드는 숲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쌓인 낙엽 때문에 바닥은 스펀지처럼 푹신했다. 어떤 곳은 부풀어 오른 카펫을 밟는 듯했다. 바싹 마른 낙엽은 발걸음에 부슬부슬 부서지고, 습기를 머금은 참나무 잎은 발밑에 달라붙었다. 미끄덩 발을 헛디딜 때마다 잘 반죽한 도기 흙처럼 노란빛이 감도는 회색 진흙이 드러났다. 


삭삭삭삭. 두 마리 개가 낙엽을 헤치는 소리에 일행의 걸음도 빨라졌다. 과연 우리는 트러플을 찾을 수 있을까.


헉헉거리며 알리는 고개를 땅으로 숙인 채 냄새를 좇았다. 어린 동생은 그런 알리 주변을 맴돌며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방향을 휙휙 바꾸는 두 녀석을 미끄러운 낙엽과 진흙 위에서 따라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개들이 너무 깊숙이 숲으로 들어가거나 사람들이 따라가기 위험한 곳으로 향하면 트리풀라우가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줬다. 그러면 알리는 다시 방향을 잡았다. 동생도 곧 알리를 따라 트러플 냄새를 찾아 움직였다. 빼곡한 참나무 사이로 산등성이를 따라 한동안 이동했을 때였다.


알리의 꼬리가 갑자기 세차게 흔들렸다. 이내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주인을 올려다봤다. 트리풀라우는 주머니에서 강아지용 소시지를 꺼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잘라 입에 넣어주고 두 녀석의 이마를 쓸어줬다. 그리고 땅에 무릎을 꿇었다. 짧은 빨간 손잡이가 달린 스파튤라 같은 도구를 꺼내더니 먼저 알리가 코로 콕 찍은 자리의 흙을 한 줌 집어 들었다. 코에 가져가 흙냄새를 맡았다. 그제야 도구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듯 더듬더니 도구를 조금 더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흙덩어리 하나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땅에서 파낸 트러플을 보여주는 트리풀라우, 사진: 정수지]


못생긴 알감자 같은 트러플이 처음 햇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트리풀라우는 겉에 묻은 흙을 쓱쓱 털어낸 뒤 우리에게 건넸다. 사진을 찍고 향도 맡아보라고 했다. 태어나 처음 만져보는 갓 채취한 트러플. 생각보다 단단했다. 표면에는 볕 한 번 들지 않은 땅속의 서늘한 습기가 밴 듯했다. 코에 가져가는 순간은 더 강렬했다. 만화 속 냄새 연기가 콧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듯 농밀한 향이 순식간에 머릿속까지 퍼졌다. 반사적으로 군침이 돌았다. 이게 진짜 화이트 트러플이구나.


그런데 손바닥 위의 작은 트러플을 들여다보다 궁금해졌다. 화이트 트러플, 너는 누구니.


[알감자처럼 생긴 화이트 트러플, 사진: 정수지]


땅 아래 숨어 있는 버섯

트러플을 감자 같은 덩이뿌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트러플은 버섯의 한 종류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땅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실체다. 균사는 주변으로 뻗어 나가 나무의 뿌리와 관계를 맺는다. 특히 화이트 트러플(Tuber magnatum)은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참나무, 개암나무, 포플러, 버드나무, 린든 등 여러 나무와 균근을 형성하며 공생한다.


알바에서 본 전시 자료에는 화이트 트러플과 관계를 맺는 나무만 10종 넘게 소개돼 있었다. 참나무도 한 종류가 아니었고, 개암나무와 여러 종류의 포플러, 버드나무가 함께 등장했다. 좋은 트러플 산지를 이야기할 때 흙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토양의 구조는 어떤지, 물이 얼마나 머무는지, 기온과 강수량은 어떤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와인의 테루아를 이야기할 때 포도나무를 빼놓을 수 없듯, 트러플의 환경을 이야기할 때도 숲을 빼놓을 수 없다.


[트러플이 자라는 토양 단면, 사진: 정수지]


좋은 트러플을 만드는 것은 '균형'

현장에서 만난 트리풀라우는 석회질과 모래가 섞인 토양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트러플이 자라는 조건을 특정 토양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알바에서 본 자료는 화이트 트러플에 알맞은 토양을 세립질의 미사질 또는 사질 토양, 경우에 따라 석회질을 포함한 토양으로 설명했다. 너무 거칠거나 자갈이 많은 토양도, 지나치게 단단한 토양도 좋지 않다.


그리고 흙의 종류만큼 중요한 조건이 있다. 물이다. 화이트 트러플이 자라는 토양은 건조한 여름에도 공극에 어느 정도 수분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물이 많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젖으면 산소가 부족해지고, 너무 건조하면 트러플이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물과 토양의 균형이다. 트리풀라우도 물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눈이 적게 내리는 상황을 걱정했다. 겨울에 쌓인 눈은 서서히 녹아 토양에 물을 공급하지만, 여름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는 땅속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기 쉽다는 설명이었다.


와인에 빈티지가 있듯 트러플에도 좋은 해와 어려운 해가 있다. 비가 언제 얼마나 내렸는지, 여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토양이 수분을 얼마나 유지했는지가 그해의 트러플에 영향을 준다. 기후변화는 포도밭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숲 아래에서도 변화는 이어진다.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트러플 헌터와 개, 사진: 정수지]


개는 어떻게 트러플을 찾아낸 걸까

트러플 사냥을 따라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알리는 땅속에 묻힌 작은 버섯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답은 향에 있다. 트러플은 땅속에서 자란다. 땅 위에서 자라는 많은 버섯처럼 바람을 이용해 포자를 널리 퍼뜨리기 어렵다. 대신 성숙하면서 강한 향을 내어 동물을 끌어들인다. 동물이 트러플을 먹으면 포자가 이동할 기회도 생긴다.


인간이 그토록 매혹되는 트러플의 향도 이런 생존 방식과 맞닿아 있다. 화이트 트러플의 향은 하나의 물질로 설명하기 어렵다. 여러 휘발성 향기 성분이 복합적인 향을 만들며, 그중 2,4-디티아펜테인은 화이트 트러플의 특징적인 향에 관여하는 주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마늘과 발효 향부터 버섯, 흙, 꿀과 건초를 연상시키는 냄새까지 한꺼번에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개는 그 향을 찾아간다. 트리풀라우가 들려준 훈련 과정도 재미있었다. 어린 개에게 처음부터 땅속 깊은 곳의 트러플을 찾게 하지는 않는다. 트러플 향이 밴 물건을 찾게 하면서 놀이와 냄새를 연결하고, 이후 풀 속에 숨기거나 땅에 얕게 묻는다. 익숙해지면 점차 난도를 높인다. 제대로 찾아냈을 때는 보상이 따른다. 알리가 트러플을 찾아낸 뒤 소시지 한 조각을 받아먹었던 이유다.


사람에게도 자격이 필요하다. 피에몬테에서 트러플을 채취하려면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자격증은 5년간 유효하며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 피에몬테에서는 별도의 연간 채취세도 낸다. 트리풀라우는 단순히 숲에서 버섯을 줍는 사람이 아니다. 숲과 나무, 날씨를 읽고 개와 호흡을 맞추며 땅속의 트러플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땅을 파내며 굵어진 손마디와 주름마다 깊게 파고든 흙을 보니, 오랜 시간 숲을 오간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향이 진한 화이트 트러플, 사진: 정수지]


그런데 왜 하필 '알바' 화이트 트러플일까

여기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튜버 마그나툼(Tuber magnatum)은 알바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은 물론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화이트 트러플 앞에 자연스럽게 '알바'를 붙일까.


환경만으로는 이 질문에 모두 답하기 어렵다. 20세기 알바 화이트 트러플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인물 가운데 자코모 모라가 있다. 알바에서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그는 지역 농가와 채취자들이 가져온 트러플을 모아 판매하고 음식에 사용했다. 이후 뛰어난 트러플을 세계의 유명 인사들에게 선물하며 알바라는 이름도 함께 알렸다. 리타 헤이워스, 해리 트루먼, 윈스턴 처칠 같은 인물들이 그 역사에 등장한다. 화이트 트러플이 자라는 자연환경에 사람과 문화가 더해지면서 '알바 화이트 트러플'이라는 이름의 명성도 만들어졌다.


와인 산지와 참 비슷하다. 토양과 기후만으로 명산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그 땅을 이해해 온 사람들, 음식과 생활 문화, 역사와 시장이 함께 지역의 이름을 완성한다.


[식당에서 만난 트러플, 사진: 정수지]


바롤로와 화이트 트러플은 같은 땅의 향일까

알바에서 만난 트리풀라우는 이곳 화이트 트러플의 향이 특별하다고 자부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낳는 이 지역의 토양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듣고 있으면 꽤 매력적인 설명이다. 같은 피에몬테의 땅에서 네비올로가 자라고, 그 곁의 숲 아래에서는 화이트 트러플이 자란다. 둘에게서 흙과 숲을 떠올리는 향을 찾는 일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과학은 조금 더 복잡하다. 화이트 트러플의 휘발성 향기 성분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산지에 따른 차이가 나타났다. 반면 더 넓은 지역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채취한 개별 트러플 사이의 차이가 서로 다른 산지의 차이보다 크게 나타나기도 했다. 흙 하나만으로 트러플의 향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토양과 수분, 기후, 숙주 나무와 미생물, 개별 트러플의 성숙 상태까지 여러 조건이 향에 관여한다.


그러니 '바롤로와 알바 트러플은 같은 토양에서 나왔기 때문에 향이 닮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렇게 바라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바롤로와 화이트 트러플은 같은 풍경에서 태어나지만, 그 풍경을 담는 방식은 다르다. 그리고 초겨울의 피에몬테 식탁에서 둘은 다시 만난다.


[트러플을 올린 요리, 사진: 정수지]


트러플은 혼자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화이트 트러플과 바롤로.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두 이름을 한 식탁에 올리는 일은 자연스럽다. 숙성한 네비올로에서는 장미와 말린 붉은 과실에 향신료, 가죽, 타르, 숲을 연상시키는 복합적인 향이 발달한다. 트러플의 농밀한 향과 이어지는 지점도 많다. 하지만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향의 유사성만으로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피에몬테에서는 버터를 두른 타야린(Tajarin), 달걀, 폰두타(Fonduta), 카르네 크루다 알알베제(Carne cruda all'Albese), 아뇰로티 델 플린(Agnolotti del Plin), 리소토 같은 음식 위에 화이트 트러플을 얇게 깎아 올린다. 따라서 와인이 실제로 만나는 상대는 트러플만이 아니다. 달걀노른자와 버터의 지방, 치즈의 염도와 감칠맛, 파스타의 전분, 생고기와 육류의 단백질까지 한 접시 안에서 함께 만난다.


그렇다면 와인도 음식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지방이 풍부한 음식에는 입안을 정리할 산도가 중요하고, 육류처럼 단백질이 충분한 음식은 타닌이 있는 와인을 받아줄 수 있다. 반대로 섬세한 음식에 지나치게 강한 타닌과 알코올은 트러플의 향을 가릴 수 있다. 결국 트러플에 어떤 와인을 마실 것인가보다 트러플을 무엇과 먹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선택지는 바롤로 밖으로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인 알타 랑가부터 티모라쏘, 바르베라, 펠라베르가까지. '트러플에는 바롤로'라는 익숙한 공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에몬테의 여러 와인을 음식과 함께 맞춰보자. 


[제공: 지에프비노]


델테토 알타 랑가 브뤼 밀레지마토 Deltetto, Alta Langa Brut Millesimato 

달걀과 화이트 트러플

트러플과 함께 마시는 와인이 꼭 스틸 와인일 필요는 없다. 피에몬테에는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알타 랑가가 있다. 델테토는 1980년부터 전통 방식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온 생산자로, 알타 랑가 브뤼 밀레지마토는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사용한다. 스테인리스에서 발효한 뒤 병에서 2차 발효하고 효모와 함께 최소 30개월 숙성한다. 고운 기포와 함께 빵 껍질과 효모를 연상시키는 향이 나타나며, 드라이하고 산뜻하면서도 감칠맛이 좋은 스타일이다.


여기에는 달걀과 화이트 트러플을 권하고 싶다. 부드럽게 익힌 달걀을 갈랐을 때 흘러나오는 노른자의 지방과 농도를 알타 랑가의 산도와 기포가 산뜻하게 정리한다. 긴 효모 숙성에서 얻은 빵과 효모의 풍미는 달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타닌이 없어 화이트 트러플의 향을 가리지 않는다. 트러플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에몬테의 또 다른 전통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조합이다.


[제공: 에티카와인스]


스카르파 몬페라토 비앙코 티모라쏘 Scarpa, Monferrato Bianco Timorasso 

달걀 또는 버터 리소토와 화이트 트러플

트러플이라고 반드시 레드 와인을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스카르파의 티모라쏘는 이 브리끼 포도원의 해발 350~400m 남서향 포도밭에서 자란다. 국내에 소개된 2020 빈티지는 100% 티모라쏘로, 스테인리스에서 양조하고 7~10개월 탱크 숙성한다. 젖산 발효는 하지 않는다. 병입 후에는 다시 24개월 이상 숙성하며, 생산량도 4,950병에 그친다. 진한 꽃과 꿀, 허브와 플린트를 연상시키는 향에 좋은 산도와 풍부한 과실, 감칠맛과 긴 여운을 갖춘 풀바디 화이트다.


여기에는 달걀이나 버터 리소토가 잘 어울린다. 반숙 달걀을 갈라 노른자가 흘러나오는 순간 화이트 트러플을 깎아 올려도 좋고, 버터와 치즈로 마무리한 리소토 위에 트러플을 올려도 좋다. 티모라쏘의 산도는 노른자와 버터의 지방을 정리하고, 충분한 무게와 질감은 음식의 부드러움을 받쳐준다. 타닌이 없어 트러플의 섬세한 향을 방해할 여지도 적다. 트러플과 레드 와인의 조합에서 벗어나 화이트 와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병이다.


[제공: 에티카와인스]


스카르파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라 볼리오나' Scarpa, Barbera d'Asti Superiore 'La Bogliona' 

폰두타와 화이트 트러플

이번에는 네비올로에서 벗어나 보자. 스카르파는 장기 숙성형 바르베라로 이름난 피에몬테의 오래된 생산자다. 라 볼리오나는 그중에서도 생산자를 대표하는 바르베라다. 라 볼리오나 2017은 이 브리끼 포도원의 평균 수령 30년 포도로 만든다. 18~20일간 껍질과 접촉해 발효한 뒤 50hL 프랑스 알리에 오크에서 무려 36개월을 보내고 병에서도 2년 이상 숙성한다. 연간 생산량은 약 9,000병이다. 체리와 라즈베리, 자두에 민트와 향신료, 커피가 더해지고 농축된 풍미와 무게를 높은 산도가 단단하게 받친다.


여기에는 폰두타(Fonduta)를 권하고 싶다. 녹인 치즈에 달걀노른자와 버터를 더해 뜨겁게 만든 폰두타 위에 화이트 트러플을 깎는다. 보기만 해도 진한 질감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트러플과 비슷한 향을 가진 와인을 찾는 일이 아니다. 산도다. 바르베라의 높은 산도가 치즈와 노른자, 버터의 지방감을 정리하고 다음 한입을 준비한다. 동시에 장기 숙성으로 얻은 와인의 깊이와 농도는 폰두타의 무게에 밀리지 않는다. 좋은 페어링이 언제나 닮은 향끼리 만나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합이다.


[제공: 에티카와인스]


스카르파 베르두노 펠라베르가 Scarpa, Verduno Pelaverga

카르네 크루다와 화이트 트러플

때론 조금 뜻밖의 피에몬테 와인을 놓아보자. 펠라베르가 피콜로는 바롤로 북쪽 베르두노와 그 주변의 아주 작은 지역에서 만나는 토착 품종이다. 과거에는 주로 블렌딩에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이 품종의 개성을 살린 와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카르파의 2022 베르두노 펠라베르가는 더욱 흥미롭다. 포도가 자라는 곳이 베르두노의 몬빌리에로(Monvigliero)이기 때문이다. 바롤로 애호가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스카르파는 이곳을 포함해 랑게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도 포도원을 보유한다. 하지만 이 와인은 바롤로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스테인리스에서 양조하고 탱크에서 6개월, 병에서 2개월 이상 숙성한다. 붉은 체리와 딸기, 크랜베리에 꽃과 향신료가 피어나고, 몸은 가벼우며 타닌도 부담스럽지 않다. 


카르네 크루다와 함께하면 이번에는 와인이 고기를 장악하기보다 트러플에 자리를 내준다. 산뜻한 붉은 과실과 향신료가 음식과 어우러지고, 가벼운 구조는 화이트 트러플의 농밀한 향이 오래 머물 여백을 남긴다. 귀한 트러플을 먹는다고 언제나 가장 크고 무겁고 비싼 와인을 열 필요는 없다. 어쩌면 트러플과 좋은 와인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하는가보다 무엇을 가리지 않는가인지도 모른다.


[제공: 금양인터내셔날]


보르고뇨 랑게 네비올로 '노 네임' Giacomo Borgogno Langhe Nebbiolo 'No Name'

카르네 크루다 알알베제와 화이트 트러플

1761년부터 바롤로에서 와인을 만들어온 보르고뇨의 '노 네임'은 이름부터 흥미롭다. 복잡한 와인 규정과 관료주의에 대한 항의의 의미를 담아 바롤로 명칭 대신 Langhe Nebbiolo DOC로 출시한 와인이다. 국내에 소개된 2022 빈티지는 바롤로 마을 해발 370m의 남향과 남동향 포도밭에서 자란 네비올로 100%로 만든다. 석회질 이회토에서 자란 포도를 손으로 수확하고 콘크리트 탱크에서 자연 발효한 뒤 대형 슬라보니아 오크에서 2년 이상 숙성한다. 바롤로가 요구하는 최소 오크 숙성 기간보다 오히려 길다. 장미와 제비꽃, 신선한 붉은 과실과 향신료에 흙을 연상시키는 향이 겹치고 높은 산도와 타닌이 뼈대를 만든다. 


여기에 카르네 크루다 알알베제(Carne Cruda all'Albese)를 놓아보자. 생 쇠고기에 올리브오일과 레몬 등으로 간하고 화이트 트러플을 얇게 깎아 올리는 피에몬테의 음식이다. 생고기의 단백질과 부드러운 질감은 네비올로의 타닌을 한결 유연하게 느끼게 하고 산도는 입안을 산뜻하게 정리한다. 그 사이로 네비올로의 꽃과 붉은 과실, 향신료와 트러플 향이 이어진다. 트러플과 네비올로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바롤로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제공: 에티카와인스]


폰타나비앙카 바르바레스코 Fontanabianca, Barbaresco 

버터 타야린과 화이트 트러플

같은 네비올로라도 접시가 섬세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폰타나비앙카는 바르바레스코의 네이베에 자리한 가족 생산자다. 바르바레스코 2022는 해발 300m의 남향과 남서향, 석회질과 점토가 풍부한 포도밭에서 자란 평균 수령 30년의 네비올로로 만든다. 스테인리스에서 발효하고 큰 나무통과 바리크에서 10~13개월 숙성한다. 레드 체리와 라즈베리, 장미 꽃잎에 은은한 허브와 흙, 타르가 이어지고 좋은 산도와 섬세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갖는다.


여기에는 타야린(Tajarin)이 잘 어울린다. 달걀노른자를 듬뿍 넣어 가늘게 뽑은 면에 버터를 두르고 화이트 트러플을 얇게 깎아 올린다. 뜨거운 면과 버터에서 올라오는 열을 타고 트러플 향이 퍼지는, 단순하면서도 화이트 트러플의 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이런 접시에 어린 바롤로의 강한 타닌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바르바레스코의 섬세한 질감과 산도는 버터와 노른자를 정리하면서도 면의 부드러움을 해치지 않는다. 장미와 붉은 과실 향은 트러플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같은 네비올로라도 음식의 무게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제공: 롯데칠성음료]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바롤로 '몬팔레토' Cordero di Montezemolo, Monfalletto Barolo 

아뇰로티 델 플린과 화이트 트러플

그래도 바롤로를 빼놓을 수는 없다. 코르데로 디 몬테제몰로 가문은 라 모라의 몬팔레토 언덕을 1340년부터 이어왔다. 지금까지 19세대에 걸쳐 역사가 이어진 곳이다. 몬팔레토 2021은 해발 250~300m, 남동향과 남서향의 포도밭에서 자란 수령 15~50년의 네비올로를 사용한다. 각 구획을 따로 수확하고 양조한 뒤 프렌치와 슬라보니아 오크에서 18~24개월 숙성한다. 이후 블렌딩하고 병에서 다시 1년을 기다린다. 장미와 제비꽃, 붉은 과실과 향신료가 중심을 이루며, 풀바디와 탄탄한 구조를 갖추면서도 질감은 매끄럽고 우아하다.


이 정도 구조의 와인에는 음식도 힘이 있어야 한다. 아뇰로티 델 플린(Agnolotti del Plin)은 육류를 채운 작은 피에몬테식 파스타다. 여기에 버터나 육즙을 더하고 화이트 트러플을 깎아 올리면 파스타와 육류, 지방과 감칠맛이 어우러지며 음식의 풍미가 한층 깊어진다.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은 네비올로의 타닌을 받아주고, 높은 산도는 풍부한 맛을 정리한다. 장미와 붉은 과실에서 향신료와 흙으로 이어지는 와인의 향에 화이트 트러플의 향이 더해진다. 단순히 '바롤로도 흙냄새가 나고 트러플도 흙냄새가 나기 때문'에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향과 구조가 함께 맞아떨어진다. '트러플에는 바롤로'라는 고전적인 조합이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트러플 헌터의 와인

결국 트러플과 와인의 만남은 단순한 '공식'의 문제가 아니다. '화이트 트러플에는 바롤로'라는 익숙한 조합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피에몬테의 식탁은 훨씬 다채로워진다. 때로는 티모라쏘의 산도가 노른자와 버터를 산뜻하게 정리하고, 때로는 펠라베르가의 가벼운 구조와 향신료 향이 화이트 트러플의 향을 살려준다. 중요한 것은 트러플만 보고 와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트러플이 어떤 음식 위에 올라가는지를 함께 보는 일이다.


한국의 가을 산에 송이가 있다면 피에몬테의 늦가을과 초겨울 숲에는 화이트 트러플이 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귀한 것을 찾아 숲을 헤매고, 제철에 만난 향을 즐긴다는 점도 어딘가 닮았다. 차가운 숲에서 처음 만났던 못생긴 알감자 같은 화이트 트러플이 떠오른다. 알리가 코로 찾아낸 자리에서 트리풀라우가 무릎을 꿇고 흙을 한 줌 쥐어 냄새부터 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처음 손에 올려본 트러플은 작고 단단했다. 볕 한 번 들지 않은 땅속의 서늘한 습기가 밴 듯했다. 하지만 코에 가져가는 순간, 그 작은 덩어리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농밀한 향이 밀려왔다.


유난히 기다렸던 가을이 시작됐다. 문득 지난해 피에몬테의 숲에서 맡았던 그 향이 다시 생각났다.

프로필이미지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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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10.07 17:07수정 2026.10.0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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