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피노 누아(Pinot Noir)와 샤르도네(Chardonnay) 생산자들에게는 오랜 습관이 있다. 자신들의 와인을 끊임없이 부르고뉴와 견주어 본다는 것이다. 지난주 레드텅 서래점에서 열린 쓰리 스틱스(Three Sticks) 마스터 클래스에서 크리스토퍼 맷슨(Christopher Mattson) 수출 담당 매니저는 유쾌하게 웃으며 이에 대해 언급하다가 문득 덧붙였다.
“캘리포니아에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만드는 우리에게는 일종의 '부르고뉴 콤플렉스'가 있어요. 미국에도 부르고뉴 같은 등급 체계가 있다면 어디가 최고의 밭이겠느냐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듀렐(Durell)과 갭스 크라운(Gap's Crown)은 늘 그 목록에 오릅니다.” 와인 수입사 씨에스알와인이 마련한 이날 클래스는 바로 그 두 밭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채워졌다.

[쓰리 스틱스 수출 담당 매니저 크리스토퍼 맷슨, 사진: 김윤석]
쓰리 스틱스는 포도밭에서 시작한 와이너리다. 설립자 빌 프라이스 3세(Bill Price III)는 사모펀드 TPG(Texas Pacific Group)의 공동 창업자로, 1990년대 중반 TPG가 베린저(Beringer)를 인수하면서 와인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베린저가 포도를 공급받던 밭 중 하나가 듀렐 빈야드였는데, 빌 프라이스 본인이 1996년 이 밭을 사들였다. 듀렐 빈야드의 역사는 캘리포니아 와인사의 중요 단면이기도 하다. 맷슨에 따르면 1950~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채소를 팔던 에드 듀렐(Ed Durell)이 소노마 남부의 목장을 사들였고, 1970년대 목장 관리인의 권유로 포도를 심었다. 이 포도밭의 초기 고객 중 한 명이 바로 훗날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의 대명사로 추앙받는 스티브 키슬러(Steve Kistler)였다.
빌 프라이스가 듀렐 빈야드를 구입한 초기엔 와인을 만들지 않고 포도 자체를 팔았다. 와인을 양조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좋은 밭을 소유하고 있다 보면 '언제 와인을 만들 거냐'는 질문을 계속 받기 마련이다. 결국 2002년 듀렐 빈야드의 포도로 첫 와인을 내놓으며 쓰리 스틱스가 탄생했다. 쓰리 스틱스라는 이름은 설립자의 별명에서 왔다. 빌 프라이스 3세라는 이름 끝의 3세를 의미하는 로마 숫자 'III'를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쓰리 스틱스'였기 때문이다. 이후 빌 프라이스는 페탈루마 갭(Petaluma Gap)의 갭스 크라운 빈야드와 소노마 코스트 서쪽 해안 능선의 왈랄라 빈야드(Walala Vineyard)를 손에 넣었다. 이렇게 중요한 세 포도밭을 포함해 알라나(Alana), 원 스카이(One Sky),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까지 쓰리 스틱스는 총 여섯 개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2023 빈티지부터는 모든 와인에 자가 포도밭의 포도만 사용한다.
쓰리 스틱스는 좋은 포도밭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맷슨이 이날 가장 힘주어 강조한 것은 '사람'이었다. “토양과 기후는 끝없이 언급되지만, 사람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요. 하지만 쓰리 스틱스의 이야기에서도, 모든 와인의 이야기에서도 사람의 영향은 정말 중요합니다.” 와인은 토양, 기후, 사람이라는 세 다리로 선 의자와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쓰리 스틱스 역시 사람을 통해 도약했다. 2015년 오랫동안 윌리엄스 셀럼(Williams Selyem)의 와인을 만들어 온 밥 카브랄(Bob Cabral)이 합류했고, 같은 해 양조팀에 들어온 라이언 프리처드(Ryan Prichard)가 2023년부터 양조 총괄(Director of Winemaking)로 팀을 이끌고 있다.

[쓰리 스틱스 마스터 클래스 와인 라인업, 사진: 김윤석]
시음은 두 샤르도네를 나란히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갭스 크라운은 소노마 마운틴 서쪽 경사면 페탈루마 갭 한복판의 언덕에 자리한다.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 언덕을 지나 산 파블로 베이(San Pablo Bay)로 빠져나간다. 너무 추워 오랫동안 포도가 아닌 소를 키우던 곳이다. 맷슨은 '갭스 크라운의 토양은 와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차이를 만드는 건 기후'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듀렐은 소노마 밸리(Sonoma Valley), 소노마 코스트(Sonoma Coast), 카네로스(Carneros) 세 AVA에 걸친 넓은 밭으로, 돌이 많은 화산성 토양과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산 파블로 베이의 서늘한 공기가 포도밭의 개성을 형성한다. 클론도 다르다. 갭스 크라운은 디종(Dijon) 클론을, 듀렐은 캘리포니아의 헤리티지 클론인 웬티(Wente) 클론을 주로 식재했다.
양조에 대해서는 비교적 담담하게 설명했다. “샤르도네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요. 결국 작은 프렌치 바리크로 들어가죠.” 다만 압착한 포도즙을 공기에 노출해 갈변시킨 뒤 발효하는 초산화(Hyperoxidation) 기법을 활용한다. 이렇게 하면 발효 과정에서 색이 빠져 와인이 오랫동안 맑은 빛을 유지할 수 있다. 새 프렌치 오크 비율은 예전보다 낮아진 25% 정도다. “오크는 소금처럼 써야 합니다. 와인을 돋보이게 해야지 와인의 일부가 되어선 안 되죠. 포도와 땅에 자부심이 있다면, 너무 손대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두 와인의 성격 차이는 숙성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맷슨은 “갭스 크라운은 레몬 같은 산미가 이끄는 와인이고, 듀렐은 더 넉넉한 풍미를 지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듀렐은 여러 면에서 뫼르소(Meursault)를 닮아가는데, 10년쯤 숙성하면 헤이즐넛 같은 고소한 풍미가 정말 근사하게 드러납니다”라고 말했다. 두 와인 모두 출시 직후 마셔도 좋지만, 갭스 크라운 샤르도네는 5~10년, 듀렐은 10년 이상 숙성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아직 지나치게 오래되어 절정기를 지난 듀렐 샤르도네는 한 병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레드 와인 양조법을 설명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맷슨, 사진: 김윤석]
레드 와인을 시음하며 맷슨은 피노 누아의 까다로움부터 짚었다. “피노 누아는 다른 것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품종이에요. 블렌딩은 원래 1 더하기 1이 2가 되어야 하는데, 피노 누아는 1 더하기 1이 1에 그칠 때가 있어요.” 이렇게 까다로운 피노 누아 양조에는 밥 카브랄이 남긴 독특한 장치가 있다. 오래된 원통형 탱크를 눕혀 반으로 자른 길고 얕은 발효조다. 깊은 오픈 탑 발효조에서는 포도 껍질 등으로 이루어진 캡이 두껍게 형성돼 이를 깨뜨려 포도즙과 섞는 데 큰 힘이 든다. 하지만 얕은 발효조에서는 캡이 포도즙 위에 넓게 펼쳐져 얇아지기 때문에 훨씬 부드럽게 타닌과 컬러, 풍미를 추출할 수 있다. “색은 아름답게 얻으면서도 거친 타닌은 끌어내지 않는 거죠. 어릴 때도 마시기 좋지만, 오래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송이째 발효에 사용하는 전송이 비율을 묻는 질문에는 웃음 섞인 일화가 돌아왔다. 수확철 일손을 돕던 날, 지게차로 포도를 쏟아붓던 밥 카브랄이 '대략 15%쯤 되겠네'라고 하자 옆의 인턴이 그대로 15%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맷슨은 “셰프에게 소금을 얼마나 넣었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클래스를 마무리하며 맷슨은 와인을 '마시는 와인(drinking wine)'과 '생각하는 와인(thinking wine)'으로 나눴다.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와인도 있지만, 화요일 저녁에 원하는 건 그런 와인이 아닐 때도 있죠.” 세계 와인 시장이 어려운 지금, 부르고뉴를 포함한 많은 생산자가 어릴 때도 즐길 수 있는 와인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쓰리 스틱스의 얕은 발효조와 절제된 오크 역시 그 고민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이날 마신 와인 가운데 세 병에 대해 맷슨은 “아직 너무 어린 아이들”이라고 했다. 오크 뉘앙스와 과일 풍미가 우아하게 드러나지만, 아직 하나로 어우러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시종일관 유쾌했던 그는 이 부분에서 와인들이 아직 잠재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며 살짝 아쉬움을 드러냈다. 문득 10년 뒤 뫼르소를 닮아갈 듀렐 샤르도네를 다시 마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쓰리 스틱스의 다른 와인들도 함께.

[쓰리 스틱스 와인들, 사진: 김윤석]
쓰리 스틱스, 갭스 크라운 빈야드 샤르도네 Three Sticks, Gap's Crown Vineyard Chardonnay 2024
신선한 레몬 크림, 잘 익은 자두와 천도복숭아 풍미에 은은한 견과류 힌트와 유산 뉘앙스가 겹친다. 날 선 산미에 짭조름한 미감이 더해져 서늘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미디엄 풀바디에 매끈한 질감, 적절한 산미를 타고 풍미의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리수 같은 구수한 풍미가 피어난다. 서늘하지만 안정적인 생장기로 인해 알코올은 평소보다 낮으면서도 농축미를 갖춘 2024 빈티지의 캐릭터가 잘 담겼다. 생선회나 스시, 가볍게 요리한 해산물 요리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28일간 발효하고 젖산발효를 거쳐 프렌치 오크(20% new)에서 11개월 숙성했다.
쓰리 스틱스, 듀렐 빈야드 샤르도네 Three Sticks, Durell Vineyard Chardonnay 2024
향긋한 노란 꽃향기와 상큼한 핵과에서 시작해 달콤한 열대과일 풍미로 이어지며 바닐라 뉘앙스가 뒤를 받쳐준다. 레몬 같은 산미와 그윽한 백도 풍미, 크리미한 질감의 풀바디 와인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우아한 버터 뉘앙스가 조금씩 살아난다. 깊이와 무게감, 생동감을 겸비한 훌륭한 와인으로 지금도 즐겁지만 진가는 숙성 후에 드러날 것이다. 로스트 치킨, 크림소스, 모렐 버섯 요리와 잘 어울린다.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22일간 발효하고 젖산발효를 거쳐 프렌치 오크(24% new)에서 14개월 숙성했다.
쓰리 스틱스, 갭스 크라운 빈야드 피노 누아 Three Sticks, Gap's Crown Vineyard Pinot Noir 2024
보랏빛 살짝 감도는 밝은 루비 레드 컬러. 라즈베리, 체리 등 달콤한 붉은 베리 풍미에 시나몬, 초콜릿, 토스티 오크 뉘앙스가 어우러진다. 촘촘하지만 실키한 타닌, 감초가 스치는 세이버리 한 미감. 바람과 안갯속에서 천천히 익은 페탈루마 갭의 구조감이 느껴진다. 아직 단단해 본모습을 완연히 보여주지 않는 느낌으로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줄기를 제거하지 않은 전송이 포도를 16% 정도 사용했으며, 12일간 발효 후 프렌치 오크(45% new)에서 15개월 숙성했다.
쓰리 스틱스, 프라이스 패밀리 에스테이츠 피노 누아 Three Sticks, Price Family Estates Pinot Noir 2023
검보랏빛 감도는 투명한 루비 레드 컬러. 라즈베리, 블루베리, 체리 풍미에 흑연 같은 미네랄과 토스티 오크 뉘앙스가 겹친다. 부드럽고 우아한 타닌과 싱그러운 산미도 인상적이다. 갭스 크라운보다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스위트 스파이스 뉘앙스가 미묘한 복합미를 더한다. 겨울비가 넉넉했고 서늘했던 여름 덕분에 수확이 11월 직전까지 이어진 2023 빈티지의 특징이 섬세함으로 이어졌다. 보유한 여섯 개 포도밭의 포도를 모두 사용하는데, 듀렐과 갭스 크라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나머지 네 곳의 포도가 일부 더해진다. 전송이 포도 비율은 23% 정도이며, 오픈 탑 발효조에서 11일간 발효 후 프렌치 오크(35% new)에서 10개월 숙성했다. 갭스 크라운보다 5개월 짧게 숙성해 일찍부터 즐기기 좋은 스타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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