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쥐라드 생테밀리옹(La Jurade Saint-Emillion) 이야기

                                                                      

지난 해 10월 14일 롯데호텔에서 경희대 외식경영학과교수이며 한국국제소믈리에 협회공동회장인 고재윤교수의 프랑스 쥐라드 생테밀리옹 와인기사작위 수여 축하연이 있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제랄딘 에스칼 (Geraldine Escale)영사는” 생테밀리옹(Jurade de Saint-Emilion)은 8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오랫동안 관광과 와인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고재윤 교수는 기사작위를 받는 소감을 피력하며 와인을 더 마실수록 더 늦게 귀가 했으며 늦은 귀가를 이해해준 부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와인에서 느끼는 것처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어려움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이 경희대 와인과정의 전통임을 강조했다.

 


자신의 기사 작위 수상은 국내 교수 중 처음이라 영광이라며  한국 와인 연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2000년 프랑스 유학 시 처음 생테밀리옹을 방문했을 때 느낌은 중세시대로 다시 돌아간 듯 건물과 유적 그리고 풍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때 중앙 광장의  레스토랑에서의 바라본 건물 유적은 그 자체로서 박물관으로 보였다. 고재윤 교수의 쥐라드 생테미리옹 와인 기사작위 수여를 계기로 쥐라드 생테미리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아보고자한다


생테밀리옹(Saint- Emillion) 도시 소개
생테미리옹은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환상적인 로마네스크 교회건물과 함께 세계적 유적을 간직한 곳으로 가파르고 좁은 거리가 건물 사이로 길게 뻗어있다.2세기 로마시대부터 포도를 재배했다.4세기 라틴 시인 오조니우스는 이곳  포도를 예찬 하는 시를 남겼다. 생테미리옹(Saint- Émilion 이름은 에밀리옹(Émilion)이라는 수도자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그는 8세기 이곳 동굴에서 거주했다.이곳은 보르도에서 22km거리이며 리부른과 카스티옹 –라-바타이 사이 에 위치한다.

 

쥐라드 생테밀리옹(La Jurade Saint- Emillion)
 전세계에 점점 더 알려진 쥐라드 생테밀리옹은 성대한 축제이며 생테밀리옹 와인을 예찬하기위한 공식적이며 동시에 인기있는 행사이다. 쥐라드는 지역적 특성을 통합하는 동업조합과 같은 기구이며 조직이다. 쥐라드는 동업조합(Conférie)의 조직원들이다. 그들은 생테밀리옹 와인 촉진을 위하여 많은 의식이 준비한다.
쥐라드는 생테밀리옹 사람과 생테밀리옹 와인에 보답하고 명예가 되는 특별한 축제이다. 전 세계로부터 온 와인전문가,네고시앙,저널리스트들이 생테밀리옹의 명성과 판매촉진에 기여해오고 있다. 축제시기는 1년에 2회이며 봄축제(La Féte de Premtemps),6월 3번째 일요일 그리고 수확의 개시(Ban des Vendanges)는 9월 3번째 일요일에 활기를 띈다.

 

사자 왕 리차드와 쥐라드
쥐라드는 사자 왕인 리차드에 의해 주어진 확고한 권력을 말한다. 헨리왕의 두 아들, 사자왕 리차드 형제와 알리에노르(Aliénor de Aquitaine), 아키텐 여공작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알리에노르는 중세 최고의 부자였고 가장 강력한 권력자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프랑스 왕 루이 6세 아들과  결혼을 했다.그 후 십자군 전쟁 시 알게된 영국왕자이며 앙주 백작 겸 노르망디 공작인 앙리 플랑타주네(Henri Plantagenêt) 와 재혼하게 된다. 쥐라드(Jurade)는 프랑스 혁명 때까지 도시를 다스렸고 1289년 에드워드(Edward)에 의해 다른 지역(소교구)로 재판 관할권한이 공고히 확장되었다. 
 

Aliénor de Aquitaine (1123-1204), 알리에노르2004년 발행 우표(우측)    

                      

쥐라드의 역사
작은 역사는 중세 쥐라드로 부터 생겼다. 쥐라드 기원은 1199년 7월8일 이다. 장 상 테르 (Jean Sans Terre), 노르망디 공작 그리고 영국 왕은 그들의 콤뮌 관리의 권리( 세금, 조례)와 자유로운 관습을 관리하는 것을 생테밀리옹의 부르주아와 합의했다. 그 때 쥐라드 위원회는 부르주아100명 위원을 통해 선정된 12명 시정관(Jurats), 귀족위원 12명 으로 구성하여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콤뮌(Commune)을  매년 재 선출했다. 시장은 왕을 대리하여 대표를 통하여 선출되었다.
1세기 뒤에는 생테밀리옹에 속한 8개 코뮌이 늘어났으며 거기서 생테밀리옹 쥐라드 이름으로 법률적인 실행을 했다. 행정적, 경제적으로도 관리권한을 다시 가지게되었다. 중세 쥐라드는 사실상 정치적 기구였다. 와인으로 알려지고 유명해진 도시의 삶과 포도에 관련된 경제에 관해서 모든 관리를 했다.
15세기 말 프랑스가 되찾은 쥐라드가 프랑스 주권으로 되었을 때 쥐라드의 권리, 의무 그리고 힘은 프랑스 왕에 의해 다시 공고히 되었다. 시정관(Jurats)인 쥐라드(jurade)의 관리들은 시와 시민의 모든 것과 도시의 행정 업무, 와인의 품질, 오크통의 훌륭한 문장과 더불어 인증된 표시에 대한 권한을 가졌다. 와인은 쥐라드에 의한 기준에 도달해야만 했다. 오늘날은 와인에 있어 생테밀리옹 아펠리시옹(원산지 명칭)의 범위를 관리한다. 중세 초기에 깊은 기원을 가진 생테밀리옹의 옛 권력(지배권, 재판권)의 오늘날 범위는 아펠라시옹 생테밀리옹 프로테제(Appellation Saint- Emilion Protegée)의 권한에 두 명칭의 지리적 한계를 기술한다 두개의 등급은 13개 프르미에드 크뤼 크라세 (Premiers grands crus classés)와  53 개 그랑 크뤼 크라세(Grands crus classés)로 나뉜다.


쥐라드의 업무
쥐라드에서 할 수있는 것은 순전한 포도재배, 와인양조의 분야를 넘어 병원행정, 귀족과 성직자, 일반적인 자유수호자의 세금징수와 함께 사회적인 업무까지 늘어났다. 쥐라드의 업무지침은 생테밀리옹 시정관들의 콤뮌의 외부 업무에 대해 감독권을 가졌다. 그들은 재판관할구역에서 내부 행정, 사법, 그리고 경찰을 통제하고 통치했다.지역의 경제적 이익은 주로 와인에 좌우되었다. 그런 활동은 쥐라드에 대한 준비를 통해 두드러져왔다는 이유를 알수 있다.
포도재배와 양조분야에서 쥐라드의 역할은 우월했다. 그들은 와인생산과 제조를 감독하고 와인통 표시를 허가를 결정하고 수확의 시작을 선포한다.아울러 무자격으로 판단된 와인의 남용과 사기 그리고 파괴에 대해 공헌을 했다.
프랑스 혁명 때 까지 활발한 조치가 이곳의 와인의 번창과 명상을 보장했다.
오늘 날 쥐라드 축제는 풍부한 역사 속 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역사와 동일하게 중단 후 전쟁 다음 1945년 쥐라드가 재건되어 세계를 통하여 생테밀리옹 와인대사의 사실상의 기구가 되었다. 생테밀리옹 명칭에 대한 명성의 원동력은 생테밀리옹 도시와 포도의 과거의 위대한 시대 그리고 현재의 역사를 드러나게하는 유명한 행사를 소생시켰다.  해외에서 쥐라드는 미국 텍사스,뉴욕,영국 런던,벨기에 프랑드르와 알로니의 사무국를 통하여 영속적으로 대표되고 있다.


<쥐라드 드 생테밀리옹 기사작위 종류>
* Protecteurs de la Jurade (Protector): 국가원수급 대상 특별작위
* Pair de la Jurade (Peer): 세계 정치, 외교, 문학, 예술, 농업 및 국방 분야의 VIP 대상
 * Grand Aumonier(Grand Almoner): 성직자 대상
* Dame de la Jurade(Dame): 탁월한 업적의 여성 대상
* Prud’hommes de la Jurade(Counsellor): 와인생산자, 네고시앙, 수입사, 호텔, 레스토랑,  와인 샵 등 와인산업분야에서 발전 기여자
* Vignerons d’ Honneur(Honorary Winegrower): 쥐라드 승인 명예 기사

 

쥐라드 기사  취임식
기사 수여식은 아침 일찍 포도수확시간에 맞춰 시작 한다. 붉은 망토에 흰담비의 깃이 달린 옷을 입은 후 중요한 관보 사진 담당자, 기사 취임자들은 모든 조합 간부와 저명인사들과 함께 시내 행진을 준비한다.
조합원들은 조를 편성하고 시내 행진하며 조합원의 안내에 따라 흰담비 깃의 풍성한 붉은 옷을 입고 자주색과 녹색의 챙없는 모자를 쓴다. 행사에는 유력 인사가 초대되고 취임식이 행해진다.
시정관들은 시청에 이은 교회당까지 생테밀리옹의 중세와 역사적 거리에서 긴 행렬을 인솔한다. 유명한 수도회 건물들은 생테밀리옹의 쥐라드 의식을 거행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고재윤 교수 쥐라드 생테밀리옹 기사 작위 취임

 

쥐라드와 생테밀리옹 유적
지붕이 열려있는 진정한 박물관인 생테밀리옹 도시 건축물은 아름다움과 특성 그리고 로마 시대의 유적을 통해 놀라움을 발견하게 된다. 가파른 골목길과 테라스 흐름에 따라서 건묵물과 유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포도원 멋진 풍경이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낙타색과 황갈색을 반영하는 돌로된 건축물은 그들 만의 도시의 정신적 기풍을 가졌다. 역사적 특징과 쥐라드는 지난 수세기 도시의 정치적 경제적 강한 영향이 연상되는 향수를 보여준다.
쥐라드 기사 작위 수여식은 생테밀리옹의 가장 생소하고 신비스런 곳에서 행해진다. 석회암을 캐낸 거대한 동굴로된 방은 더 생소하고 감동적이며 동시에 성대한 의식을 제공해준다. 생테밀리옹 동굴 거주 전통은 놀라운 것이다. 세계유일의 통돌로된 교회, 지하 회랑 70ha 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다. 은자의 처소, 도시의 가장 오래된 기념 건축물, 해골더미, 지하무덤, 통돌교회는 지하 회랑의 10km석회암에 파져있고 오크 통이 있는 와인저장고, 박물관으로 정비되어 방문자에게 접근이 가능하다. 
 


샤토 르와 탑과 포도 수확 선언
오후 늦게 샤토 뒤 르와(Château du Roy/중세시대의 돌로된 건물의 맨 위 층) 탑에서 시정관을 통해 9월 수확시작에 대한 성대한 선언이 있고 생테미리옹의 여러 와인을 마시는 기회가 있다. 샤토 뒤 르와(Château du Roy)는 독창적이고 독특한 중세시대의 방어 요새인데 지롱드 지방에 망가지지않고 남아있는 상부 돌출 형태로 된 큰 탑이다. 이는 독특한 생테밀리옹의 유적이며 자유 도시 같은 성벽내에서 남아있는 왕권의 상징이다.
이곳은 문화적 경관이란 타이틀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었다. 포도 재배 경관으로는 세계에서 첫 번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처럼 도시가 세계적으로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음식과 와인이 없이는 시작도 끝도 없다. 쥐라드 기사 수여식 참석자들은 수확 연회를 위하여 장엄한 도미니크 수도사 방으로 되돌아간다.

 

자료제공: 자료 출처_Text, Photo : Bernard Mayer,Petite Explicationsur la Jurade(2007.10.26), Wikipedia, Tthe free encyclopedia. Wine 21.com, 고재윤 교수, 기타

프로필이미지김창용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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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04.21 00:00수정 2012.06.2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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