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남녀노소 불문하고) 치고 영국의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과거 푸드 채널에서도 방송되기 시작한 그의 요리는 특별한 레시피가 없는 것 같아도 건강한 식재료, 건강한 먹거리를 통하여 그 즐거움을 찾고, 사람들에게 다양한 요리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특별하게 어떤 재료가 몇 그람이 들어가거나 몇 스푼이 들어간다는 식이 아니라, 손 맛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데코레이션 보다도 음식 자체의 맛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그의 요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지인들과 펜션이나 리조트에 놀러 가게 되면 그의 조리법을 많이 응용하게 되는데, 그 때 마다 그의 놀라운 레시피는 천재적이라 할 만 하다.
그는 TED에서도 강연을 하고 있으며, 여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국의 공립 학교 급식현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좀 더 건강한 식생활을 이끄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요리를 제대로 모르는 견습생을 모아서 레스토랑을 여는 fifteen 등 여러 활동은 사회성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제이미 올리버의 활동을 보면서 한 사람의 활동이 세상을 참으로 많이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물론 그의 활동뿐만 아니라 주변을 보더라도 여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은 어째서 설득력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요리 시 레시피대로의 정량이나 조리시간 등을 엄수하지 않는다.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파스타를 건져내고 올리브 오일을 대략 뿌려서 내어 놓는다. 그의 요리는 특정한 형태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 그의 요리는 사실 매우 정교한 수치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한 봉지의 파스타 면은 이미 4인분이라는 정보가 있으며, 그는 그 정보에 주목한다. 야채 역시 한 단의 양은 상당부분 정해져 있다. 생선 한 마리를 구매할 때에도 가격에 따라서 그 분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우리가 고기를 살 때에도 그 고기의 양은 100g이다 600g이다 하여 어느 정도 정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의 대충대충 요리 조차도 이미 잘 짜인 수치 정보와 구조 속에서 자연스러움과 공감을 무기로 하여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수치가 명확할 때에 잘 설득된다. 다음의 예를 들어 보자. “지구 온난화가 심각합니다”라는 말 보다는 “투발루의 평균 해발은 몇 미터인데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5년 이내에 투발루는 사라집니다” 와 같이 수치가 제시된 후자의 경우는 그 설득력이 남다를 것이다. 즉, 설득은 공감이라는 형태가 주어지게 되면 더욱 더 힘을 얻는다.
제이미 올리버는 데일리 와인을 발굴하여 현재 자신의 사이트에서 와인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국내법 기준에 이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제이미 올리버의 사이트에서 보르도 1등급 그랑크뤼 와인을 판매한다고 한다면 과연 그의 일상성, 그리고 대중을 위한 활동이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 설득의 기제란 공감대(consensus)를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하게 된다. 과거는 비폭력 운동, 혹은 저항 운동이 있었다면, 오늘날은 사회적인 운동을 통하여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러한 운동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이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좋을 수 있으나, 수치와 통계로 무장하며,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이 된 이후 다른 어떤 하나의 현상에 대한 여론을 바꾸기 위한 활동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 경우에 그 폐해는 극단에 다다를 수 있다.
이는 과학 현상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와인에 있어서도 동일시 할 수 있다. 아울러 어떤 하나의 사실(fact)를 바탕으로 이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현상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필자는 이에 대한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와인의 ''점수'' 라고 하는 부분이라 본다. 다음과 같이 생각 해 보자. “이 와인은 맛있어요”하는 것과, “이 와인은 로버트 파커가 95점을 주었습니다. 가격은 5만원이고요”하는 말을 비교해 보면 과연 사람들의 선택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예측하건대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은 후자의 경우에 집중될 것이다. 이는 ‘숫자’라고 하는 정교한 정보 체계와 함께 점수제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이 사실(fact)에 대하여 대중, 혹은 관련된 사람들의 해석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 점수에 대해서 신뢰감을 보여주는 이가 있을 것이며, 이 점수는 단지 와인의 가격, 그리고 명성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이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어떤 와인의 점수가 몇 점이다 하는) 역시 변하게 된다. 로버트 파커는 자신이 시음했던 와인을 다시 시음해서 더 좋아지거나 나빠질 경우 점수에 대해 조정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활용하는 것이 높아지는 것, 그리고 가장 높았을 때는 기억하나 낮아진 것은 숨기려 한다. 만약 로버트 파커의 점수가 100점이라고 평가 되었다가 몇 년 지난 뒤에 점수가 강등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 번 100점이 되었던 와인은 그 이후로도 계속 100점의 위치에 있게 된다. 여러 정보들은 배제된 채 말이다.
권위성과 공감대, 공정성을 가지고 있는 수치정보일수록 그 정보는 일반화 되고 대중에 의해서 다각도로 활용되기가 쉽다. 그 만큼 유혹에도 쉽게 노출된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과연 그 점수는 공정한가”에 대하여 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의외로 필자가 보기에 여기는 간단한 기준이 존재한다고 본다. 즉 “맛이 있는 와인인가 아닌가”하는 부분이다. 그 것은 로버트 파커에 있어서도 늘 가장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 기준일 것이고, 필자의 경우에도 와인을 시음할 때에 이 와인의 맛이 가장 큰 중심점을 차지한다. 일전에 필자의 글 “공정에 대하여”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으나 우리는 그 점수의 공정성에 대하여 가장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에서 그 점수는 공정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점수화 되는, 구체적이며 일반화 된 측정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것을 측정하는 사람의 마음이 늘 고뇌하기 때문이다. 파커도 그 부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점수를 수정하는 것일 것이다. 인간적 오류를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가 와인을 즐길 때, 제이미 올리버가 요리를 하듯 와인을 즐길 것을 제안한다. 즉,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기반에는 품종의 비율, 그리고 와인 스펙테이터나 로버트 파커의 점수가 이미 와인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나 잔에 따라진 와인에는 그 어떤 표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온도도 알 수 없고, 품종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와인은 맛이 있다.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가 다양한 수치의 바탕에 근거하였으나, 결국 음식을 먹는 시점에는 인간의 평안을 위하여, 그리고 즐거움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그 시점에도 와인이라는 것이 아주 정교하고 잘 짜인 수치에 바탕 하여 존재한다 한들, 마시는 시점에는 그러한 것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해서 존재할 필요가 있다. 100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80점짜리 와인, 90점짜리 와인이라 하더라도 내 앞에 있는 와인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와인을 어떤 잔에 마신다 한들, 어떤 음식과 마리아주를 맞추고자 한다 한들, 그 기저에 있는 정교한 수치 정보를 잠시는 내려 놓고 마시자. 그 것이 와인을 즐기는 진정한 방법 아니겠는가?
정휘웅 와인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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