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론과 법칙(law and theory)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뉴턴의 사과와 관계가 있다. 뉴턴은 사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모든 것은 끌어 당기는 성질이 있다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뉴턴의 운동법칙이라 해야 하는데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등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법칙”이라는 것이다. 법칙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생각 해 보자. 뉴턴의 법칙만큼이나 아인슈타인의 이 “이론”은 수 많은 관찰에 의해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렇다면 “법칙”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왜 아인슈타인의 것은 “이론”이며, 뉴턴의 것은 “법칙”으로 지칭되고 있을까? 이 것에 대한 답은 필자도 아직까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좁은 필자의 생각으로, 흔히 법칙은 과학적 실험을 통하여 증명된 이론이 법칙으로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이 “모든”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일상에서 살펴보자.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것은 절대 불변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로 우리는 “죽을 때 까지”밖에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것은 생과 사의 법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고 또 거듭할수록 인간은 관찰,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지속되는 의문으로 인해 그 것을 “법칙”으로 부르기에 더욱 더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이 모든 것들 조차도 이제는 점차로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아주 괴상한 우주 이론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 주변이 바로 3차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언제 3차원이라고 하는가? 시간을 더하면 4차원인데 4차원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모든 것은 90도의 각도로 축을 이룬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공간은 제 마음대로 구부러질 수 있고, 사람의 신체에 직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것을 직선의 세상으로 한정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양자와 전자의 세계로 가면 그러한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아주 기이한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것을 눈으로 관찰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이제는 “법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점차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가을 한 신문기사는 빛 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입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것은 “빛(광자) 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대 사건이다. 물론 앞으로 오랜 검증 시간을 거쳐야 하지만 소위 “타키온: 빛 보다 빠른 속도”가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크기, 세상의 크기부터 모든 이론을 다 바꾸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만약 뉴턴의 시대였다면 아인슈타인의 법칙이라 불리었을지 모를 일이,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법칙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두려워한다. 무엇 하나 확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와인을 마실 때에도 그 “확정성”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어느 와인을 한 병 개봉한다 한들, 이 와인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를 확신할 수 없다. 필자는 와인의 시음노트를 쓸 때 반드시 그 시간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지금 현재로써는 이러한 상태이나, 생산된 이후에 몇 년이 지나서 어떠한 상태일 것이다”하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해마다 그 포도의 상태에 따라서 와인의 이 시간에 대한 평가는 제각기 달라진다. 심지어는 각 병의 상태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콜크의 불량 여부, 그리고 보관 방식의 여부 등에 따라서 동일한 연도에 생산된 와인이라 할지라도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 다양성은 우리가 와인에 대해서 확정적 “법칙”을 들이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어떤 와인 애호가들 중에서는 특정 지역에 대해서 편애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대신 어떤 특정 지역을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서 폄하하는 경우를 자주 관찰하곤 한다. 이 것은 과거의 관점에서 너무 쉽사리 “법칙”이라는 것을 주어서 와인을 일반화 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가령 로버트 파커가 1982년 빈티지를 최고의 빈티지로 추앙했다고 한들, 2000년 빈티지가 세기의 빈티지라고 한 들, 모든 와인이 동일한 조건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각 와인들은 자신만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대개 와인을 구매할 때에, 이 빈티지 차트(연도별 와인들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를 참조하고, 나는 주체적인 사람이므로 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 수치 정보에 미리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는 보는 것에 있어서 내가 믿고자 하는 것을 더 믿는 경향이 있고 시각에 있어서, 그리고 그 이외의 감각기관 역시 그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단순히 이론으로 남아 있던 정보들이 약한 경험적 지식에 따라서 법칙으로 바뀌는 경우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에 내가 확정적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던 그 모든 사실 마저 하루 아침에 바뀔 정도로 우리의 세상, 우리의 사고는 확정적이지 않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법칙”이라는 것을 찾기가 더욱 어려운 시기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하물며 와인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와인을 시음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 다양성을 남겨둠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늘 “이론’에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 것이 와인을 오래오래 즐겁게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프로필이미지정휘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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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1.09.26 00:00수정 2012.06.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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