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특집>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조선일보 2002.12.09일자)

▲사진설명 : 소테른 와인과 프와그라(거위 간).
연말 행사에 등장하는 ‘축제의 술’ 샴페인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캐비어’다. 별을 연상케 하는 샴페인과 흑진주 같은 캐비어는 미식가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만남. 러시아의 알렉상드르 2세는 프랑스산 루이나 샴페인을 수입해서 흑해산 캐비어와 함께 마셨고, 루이 14세는 러시아에서 캐비어를 가져와 샴페인과 마셨다고 한다. 황제들의 식탁을 재현해 놓으면 입안에서는 옥구슬들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든다.
미식으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이 자랑하는 요리가 거위 간인 ‘프와그라’다. 프와그라와 찰떡궁합으로는 프랑스 소테른(Sauternes)의 화이트 와인을 꼽는다. 기름진 프와그라에서 달콤한 기운이 배어 나올 때 달콤한 소테른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이면 미각은 감미(甘味)의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소테른 와인은 곰팡이균이 포도알에서 수분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함으로써 단맛을 이끌어내는 와인이다.
하비 케이틀과 흑인 할머니가 닭고기를 사다가 와인과 곁들여 마시는 영화 ‘스모크’의 마지막 장면은 소박하면서도 훈훈한 느낌이 든다. 닭고기에는 가벼운 레드와인이나 로제와인이 어울린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칠레산 메를로(Merlot) 와인이나 프랑스 앙주(Anjou) 지역의 로제와인이면 부드러운 육질과 부드러운 와인 맛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백숙이나 구이에 다 어울린다.
겨울은 싱싱한 석화의 계절이다. 생굴을 먹거나 굴전을 부쳐먹을 때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굴에는 상큼한 샤블리(Chablis)를 비롯해서 샤르도네(Chardonnay)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배릿하면서도 입안에서 우유가 터지는 듯한 느낌과 황금빛 와인의 매혹은 차가운 겨울 바다를 느끼게 한다. 조개 무리도 겨울철에 가장 맛이 오른다. 가리비나 백합처럼 쫍쪼름한 맛이 남아 있는 조개에는 과실맛들이 풍부하게 퍼지는 상세르(Sancerre) 와인을 곁들이면 좋을 것이다.
겨울이면 길거리에는 군고구마 굽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잘 구운 고구마 위에 신김치를 얹어 먹어도 맛있겠지만 자극이 적은 음식이라 와인과도 어울린다. 꽃처럼 화사한 향이 나면서도 은은하게 단맛이 흐르는 독일이나 알자스의 리슬링(Riesling) 와인은 구수하고 달콤한 고구마와 잘 어울린다. 뜨끈뜨끈한 고구마와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나라에는 빼어난 쇠고기 요리들이 많다. 그 중 대표작은 불고기. 불고기의 들큼한 양념에는 프랑스 론 지방의 와인이 좋다. 후춧가루가 톡톡 쏘는 듯한 향은 불고기의 양념맛을 덮어주고, 새콤달콤한 맛은 양념이 잘 밴 불고기 맛과도 어울린다. 과히 비싸지 않은 코트 뒤 론(Cote du Rhone)이나 교황의 아비뇽 유폐라는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키는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교황의 새 성이라는 뜻)’로 맛을 견주어볼 만하다.
(고형욱·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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