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은 명절음식, 어떻게 처리할까


민족 최대 명절인 설 연휴가 지나갔다. 주말이 물려 상대적으로 짧았던 연휴에다 설 당일의 기온이 근래 들어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하는 등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오랜만에 뜨듯한 고향집 아랫목에 누워 몸을 지지며 뒹굴 거리거나,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윷놀이나 고스톱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하긴, 최근엔 명절이면 반복되는 친척 어르신들의 결혼 성화를 피해 해외로 도피(?)하는 골드미스∙미스터들과 연휴 내내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제법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던 명절 연휴의 백미는 역시 음식 준비가 아닐까. 우리 어머님들은 연휴 전부터 제수 준비에 여념이 없고, 설 전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차례상에 올릴 음식들을 만든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이라도 한자리에 모일 친지와 가족들과 함께 나눌 명절 음식을 준비하기 마련. 부엌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탕국을 끓이는가 하면 거실에서는 신문지를 펼쳐 놓고 프라이팬에 전 굽기에 한창이다. 금새 한 솥 가득 고기가 익어가고, 커다란 광주리에 푸짐하게 음식들이 쌓인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도 설 당일이 지나면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냉장고를 열면 보이는 것은 남은 생선과 식은 파전, 봉지에 담긴 전통사탕과 약과 등… 이젠 쳐다보기도 싫은 명절음식들뿐이다. 그렇다고 이 아까운 음식들을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냉장고에 쌓아 둬 봐야 종국엔 상해서 버릴 게 뻔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연휴 내내 식은 잡채에 나물 반찬으로 연명하거나 김치찌개에 남은 전들을 우겨 넣어 근본도 모를 잡탕찌개를 만드는 경우가 다반사.

 

하지만 ‘와인 러버’라면 명절 음식을 보고도 와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특히 현명하고 호기심 많은 애호가라면 명절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한 번쯤은 고민해 보지 않았을까? 골칫거리가 되어 버린 음식들을 즐겁게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생각은 했으되 결론을 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 조합을 소개한다. 이제 냉장고에 쌓여 있는 명절 음식들을 꺼내고 와인 병을 열 차례다.


종합 선물세트, 모듬전에는: Donnafugata, La Fuga Chardonnay Contessa Entellina
차례상에 올라오는 전들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파전과 녹두전, 고구마, 동그랑땡, 전유어, 꼬치전 등 식물성 재료에서부터 해산물과 육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가 사용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비교적 양념을 가볍게 써서 재료의 맛이 잘 살아있으면서 맛의 농도는 가벼운 편. 따라서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을 매칭하면 큰 무리는 없다. 콕 집어 추천하는 와인은 나라셀러에서 수입하는 ‘라 푸가 샤르도네’.  잔에 따를 때부터 피어나는 달콤한 파인애플 향이 일품인 이 와인은 신선한 허브향과 알싸한 미네랄이 어우러져 기름기를 말끔하게 씻어 주면서도 다양한 식재료 본연의 맛과 충돌하지 않는다. 게다가 적당한 바디감과 무난한 산미, 그리고 상온에서 와인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드러나는 유산향 덕분에 동그랑땡, 꼬치전 등 육류가 가미된 전과도 좋은 궁합을 보인다. 와인이 전을 부르고 전이 다시 와인을 부르는 형국이랄까. 이외에도 카비넷 급의 리슬링(Riesling)이나 오스트리아의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 스페인의 알바리뇨(Albarino)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도 곁들여 볼 만 하다.

 

진한 양념의 산적이라면: Vignamaggio, Il Macchione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Riserva
산적은 일반적으로 간장에 갖은 양념을 넣어 조리듯 요리하기 때문에 의외로 와인과의 매칭이 까다롭다. 레드 와인이라도 붉은 과일이나 꽃향을 피워내는 가볍고 섬세한 스타일은 피하고, 농익은 검은 과일맛이 강하게 어필하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추천 와인은 한독와인 수입의 ‘일 마키오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리제르바’. 처음 비노 노빌레를 마셨을 때 그 특징적인 풍미를 ‘잘 익은 간장냄새’에 비유하곤 했는데 아마도 농익은 프룬과 블랙베리, 커런트의 향에 감초와 시나몬의 단내가 뒤섞여 숙성된 뉘앙스였던 듯. 검정빛이 감도는 짙은 컬러부터 산적과의 좋은 매칭을 예감하게 하는데, 실제로 부드러우면서도 농축미 넘치는 스타일이 진한 간장 양념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비노 노빌레가 아니라면 스페인 남서부의 모나스트렐(Monastrell)이나 알리칸테 부쉐(Alicante Bouschet) 품종으로 만든 와인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한과와 함께 디저트로: La Spinetta, Bricco Quaglia Moscato d''Asti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기름에 튀겨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한과와 매칭하기엔 역시 스위트 와인이 정석이다. 국내에서 스위트 와인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모스카토 다스티. 한국 와인 시장에 스위트 와인 돌풍을 일으켰던 모스카토 다스티는 상큼하고 시원한 단맛이 편안해서 어떤 생산자의 것이라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모스카토 중에도 군계일학은 존재하기 마련. 그 중 하나가 바로 빈티지코리아에서 수입하는 ‘브리코 꽐리아 모스카토 다스티’이다. 구수한 뉘앙스의 농축된 단맛은 마치 조청이나 구운 과일을 떠올리게 하며 뒤를 받쳐 주는 적절한 산도는 좋은 여운을 남긴다. 모스카토를 한 모금 넘기면 스르륵 녹는 한과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콤한 와인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맛은 드라이하지만 달콤한 아로마가 드러나는 북부 론 지역의 비오니에(Viognier)나 알사스의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품종 와인들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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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2.01.27 00:00수정 2012.08.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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