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와인 셀러, 살까 말까?


3월이다. 온도계의 수온주가 지속적으로 영상을 넘어서며 겨우 내 꽁꽁 얼어붙었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다. 사람들은 여미었던 옷깃을 풀며 다가오는 봄을 환영하겠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슬슬 걱정을 시작하게 된다. 붙박이장이며 신발장, 다용도실 등에 잔뜩 쌓아 놓은 와인들 때문이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와인 장터에서 잔뜩 구매하고, 오다 가다 들르는 단골 와인 샵에서 한 병씩 집어오다 보니 쌓이는 속도가 마시는 속도를 추월한 지 이미 오래.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재고를 줄여 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지만, 소위 ‘득템급 와인’을 만나면 메멘토라도 된 건지 그런 의지는 눈 녹듯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금새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 것만 같은데, 계속 쌓여 가는 와인들이 30도가 넘나드는 뜨거운 여름을 견뎌낼 수 있을 지 불안하기만 하다.

 

재고 와인이 3-40병을 넘어서고 그 중에 프리미엄 와인들이 몇 병 섞이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와인 셀러 구입을 고려하게 된다. 일단 몇 병 규모의 셀러를 구매할 지 고민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다양한 브랜드를 체크하고, 기 구입자들의 후기들을 검색하는 등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와인 셀러는 기본적으로 고가의 가전제품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양한 셀러들을 살펴보고 제품 리뷰들을 읽다 보면, 결국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진짜 셀러를 사야 하나? 구매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저런 품질에 대한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정말 좋다 싶으면 가격이 너무 비싼 듯 하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굳이 셀러를 살 필요가 없다고도 하고, 나아가 차라리 그 돈으로 와인을 더 사 마시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물론 와인은 단순히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수집과 보관을 통해서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음료이기에, 이런 주장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또한 셀러를 사면 소위 ‘지름신 해방구’, 즉 고가의 와인을 더욱 자주 사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할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과연 와인 셀러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입장을 정리해 본다.


편안한 와인 라이프를 위해, 셀러 하나쯤은 있어야!

연중 끊이지 않는 백화점 와인장터에서 수시로 와인을 구매하거나 단골 와인 샵에서 희소한 와인을 구입하는 경우, 혹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고가 와인을 구입할 기회가 많은 경우 아무래도 보관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수 밖에 없다. 잠시만 나쁜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와인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되는 것이 인지상정. 게다가 본인의 생일이나 결혼, 자녀의 탄생 등 의미 있는 빈티지를 구매하거나 사연이 있는 특정 와인을 구매하는 경우 그 와인을 소비하는 시기는 비교적 먼 미래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무데서나 보관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와인 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는 자신의 저서 <보르도 와인(Bordeaux)> 에서 적절한 와인 보관 환경에 대해 ‘섭씨 18.3도에서 12.8도 사이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냄새와 진동, 빛이 없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특히 장기 숙성을 위해서는 섭씨 12.8도가 가장 이상적인 온도라고 언급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이런 온도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셀러 구입 밖에 없다. 몇 년 이상의 장기 숙성을 원한다면 셀러를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와인 셀러의 성능, 특히 정온 및 습도 유지 기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국내외 메이저 회사에서 출시한 셀러는 어느 정도 검증된 제품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어쨌건 와인을 셀러에서 보관하면 최소한 더운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급격한 온도변화에서 와인을 보호할 수 있다.

 

게다가 셀러는 몇 가지 부가적인 편의를 제공한다. 우선 수 많은 와인들을 정리해 주는 와인 랙(wine rack)의 역할. 몇 십 병, 심지어는 몇 백 병의 와인을 일반 상자나 낱 병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는 셀러에 차곡차곡 넣는 것이 훨씬 깔끔하고 출납 또한 편리할 것이다. 또한 와인을 바로 꺼내어 마시기에도 좋다. 화이트 와인은 바로 마시거나 몇 분 정도만 쿨링(cooling)하면 되고, 레드 와인의 경우는 몇 분만 상온에 두면 딱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된다. 사실 실내에서 보관한 레드 와인, 특히 더운 여름에 상온에서 방치된 레드 와인은 권장 음용 온도를 넘어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마시기 전에 와인의 온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셀러가 있다면 이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무엇보다 와인 보관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장점이다. 마음 편한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 말이다.


이번 주말에 마실 와인을 굳이 셀러에?

흔히 와인의 보관에는 진동, 냄새, 빛, 열, 습도 등의 조절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어둡고 습하며 온도 변화가 급격하지 않고 진동과 냄새가 없는 곳에 와인을 보관하라는 얘기다. 진동과 빛, 그리고 냄새의 통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온도, 그리고 습도를 통제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조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절대 조건일까? 오히려 전체적인 조건과 맥락 안에서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닐까?

우선 일반적인 와인 소비 패턴을 생각해 보자. 파인 와인(fine wine) 수집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인 구매 후 몇 주 내에, 길어야 1~2년 내에 마시게 될 것이다. 또한 시중에서 팔리는 와인들 또한 몇 년 내에 소비해야 하는 중저가의 편안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와인 모임에 가 보라. 숙성이 필요한 프리미엄 와인임에도 10년이 채 넘지 않은 비교적 어린 빈티지가 테이블에 올라 오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생산지가 아닌 대부분의 소비 중심 와인 시장이 그렇듯이, 전반적으로 어린 와인을 중심으로 회전과 소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짧은 기간을 보관하는 데도 셀러가 반드시 필요한가?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된 일본의 와인 만화인 <소믈리에르(18권 발매중)>와 <소믈리에(9권 완결)>의 감수를 맡고 있는 호리 켄이치(Hori Kenichi)는 <소믈리에> 8권에 삽입된 칼럼에서 보관 온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시한다. 미국 나파 밸리(Napa Valley)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의 최신 빈티지 열 두 병을 반으로 나누어 여섯 병은 섭씨 14도의 와인 셀러에서, 나머지는 여름 기온 30도를 넘나드는 실내에서 1년 넘게 보관 후 와인 전문가들이 블라인드로 시음하도록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온에서 보관된 와인에 대한 선호가 더욱 높았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어떤 와인이 셀러에서, 혹은 실내에서 보관된 와인인지 구분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한다. 물론 이 실험 하나만으로 섣불리 셀러 보관의 실효성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보관 온도에 지나치게 과민할 필요는 없다는 반증은 될 수 있다.

 

또한 습도에 대해서도 유의할 만한 코멘트가 있다. 미국의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 주기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는 매트 크레이머(Matt Kramer)는 그의 저서 <와인력(Making Sense of Wine)>에서 ‘병 숙성에 습도는 전혀 불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75%라는 습도는 전통적으로 와인 저장고의 습도이기는 하지만, 본디 병입된 와인을 위한 습도는 아니라는 주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는 습도가 숙성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검증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굳이 꼭 셀러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조만간 마실 와인들이라면 이제껏 처럼 장롱 깊은 곳이나 서늘한 서재 한 켠에 눕혀서 보관해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말이다. 볕이 들지 않는 다용도실이나 창고가 있다면 더욱 안성맞춤. 단골 와인 샵에서 목재로 된 와인 박스를 몇 개 얻어 그 안에 보관한다면 나름 운치도 있을 듯 하다. 간혹 쉽게 마시기 어려운 고가의 와인이 생긴다면? 널찍한 와인 셀러가 있는 단골 와인 샵이나 레스토랑에 보관을 부탁하면 된다. 어차피 그런 와인을 아무렇게나 집에서 따 마실 가능성은 적을 테니 말이다.


정리해 보자. 셀러를 사면 비용이 들지만 그 만큼의 편익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편익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비용 대비 만족할 수준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결국 각자의 와인 소비 패턴과 구매성향, 보관상황 등을 고려하여 셀러 구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와인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와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변질되거나 상해 버리는 음료는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와인에게 물어보자. 정말 셀러가 필요한가?

 

프로필이미지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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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2.03.16 00:00수정 2012.08.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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