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일의 와인산지, 모젤 - 3부

 

배를 타고 베른카스텔-쿠스에서 트라벤-트라르바흐로

베른카스텔-쿠스에서 트라벤-트라르바흐까지는 직선거리로 10km이다. 그러나 모젤 강을 따라 뱃길로 가면 약 25.3km의 거리가 된다. 그만큼 강이 구불구불하게 사행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10시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탔다. 배는 3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1층에는 한쪽 구석에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매점이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오늘이 수요일이고, 트라벤-트라르바흐로 떠나는 첫배라 그런지 승객은 우리를 포함해 모두 15-16명 정도이었다. 모두가 나이가 지긋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물론 대화하는 언어로 보아 우리와 같이 이웃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에서 온 관광객임에 틀림이 없다.

         그림 1. 베른카스텔-쿠스부터 트라벤-트라르바흐 사이의 단일 밭 명칭과
                 도시 명(방점)[단국대학교 방재기 교수 제작]

 

베른카스텔 마을 뒤의 단일 밭들[총합 밭, 바트쉬투베(Badstube)에 속함]


배가 떠나자마자 나는 갑판으로 나가 모젤 강 양쪽에 심겨져 있는 포도나무들을 찍기 시작했다. 우선 강 우측의 경사지에 심겨져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일 밭인  베른카스텔의 라이(특급 밭), 그라벤(특급 밭), 알테바트쉬투베(특급 밭), 독토르(특급 밭, 저자 주: 독토르 언덕의 와인이 트리어의 선제후 붸문트 2세(Boemund II)가 성 란츠후트에 체류하는 동안에 중병으로부터 치료하였다는 것이 전설로 된 밭.) 등(모두 총합 밭 바트쉬트베에 속함)이 베른카스텔의 건물들의 뒤쪽에 치솟아 있었다. 때가 10월 달이라 약간 노란색을 띄운 포도밭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여기서부터는 그림 1을 참조할 것). 

 
그라흐의 돔프로프스트
 

조금 지나자 바른 쪽 경사면으로 단일 밭인 그라흐의 힘멜라이히(특급 밭)와 돔프로프스트(특급 밭)가 서서히 닥아 왔다(모두 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 그라흐[면적 8,640m2, 인구(2010년) 658명이 사는 마을]에 잠시 정선 하여 사람을 태운 후에 다시 배는 트라벤-트라르바흐 쪽을 향해 떠나갔다. 때가 포도수확 철이라 곳곳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첼팅겐 존넨우어(1급 밭, 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
 

바른 쪽에 강가에 위치한 단일 밭 요제프회퍼(1급 밭, 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을 지나 배가 서서히 뷀렌으로 다가갔다. 뷀렌[인구(2006년) 1,262명이 사는 마을]이 위치한 곳에는 단일 밭으로 논넨베르크(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가 있으며, 벨렌의 맞은 편 경사면, 즉 강의 바른쪽에 특급 밭으로 알려져 있는 존넨우어(벨렌)가 나타났다. 배가 첼팅겐-라흐티히[면적 16,940m2, 인구(2010년) 2,204명이 사는 마을]로 다가가면서 배의 속력이 매우 느려지더니 마침내 첼팅겐 존넨우어(1급 밭, 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첼팅겐 수력발전소에 도착하였다.

모젤 강에는 트리어에서부터 코블렌츠까지 10개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있으며, 이들 수력 발전소는 매년 800Gwh의 전력을 생산하여 25만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첼팅겐의 수력발전소 댐은 1964년에 완공 되었으며, 매년 전력 생산량은 64Gwh(4개의 수력발전기 가동)이다. 이 수력발전소의 댐의 상류와 하류의 수면의 차이는 6m이다. 때문에 배가 이 댐을 통과하려면 갑문식 수로(Schleusenkanal, lock)를 통과해야만 한다. 매년 모젤 강을 운행하는 14,000여대의 화물선과 여객선을 순조로이 통과시키기 위해 첼팅겐에 제2의 수문이 건설되어 2010년 5월에 개통되었다[로크실(Schleusenkammer): 길이 210m, 폭 12.60m, 높이 6.0m, 건축기간: 2006-2009년, 총공사비: 4,500만 유로].

 

위르치히의 존넨우어
 

우리의 배는 앞에 미리 도착해 있던 배와 함께 조심스럽게 로크실로 들어섰으며, 우리 배 뒤에는 부부가 탑승한 중형모터보트가 따라 붙었다. 여기서 수면이 6.0m 내려가는데 약 20분 정도 시간이 흘러 간 것 갔다. 배가 밑으로 빠져나오니 첼팅겐 댐이 보였다. 10시 45분쯤 배가 첼팅겐에 도착하여 승객들을 내려 주고, 태운 다음 서서히 위르치히를 향해 달려갔다. 첼팅겐을 지나 다리 밑을 배가 통과하자마자 강의 왼쪽으로 호프베르크 단일 밭(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과 힘멜라이히 단일 밭(총합 밭 민츠라이에 속함)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배는 라흐티히를 지나 위르치히로 향하였다. 잠시 후에 배가 위르치히[면적 6,040m2, 인구(2010) 856명이 사는 마을]에 들어서니 왼편으로 단일 밭 뷔르츠가르텐(특급 밭), 골디빙게르크(1급 밭), 트레프헨(특급 밭), 프레라트(특급 밭)(이상 모두 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이 나타났다. 모두가 매우 가파른 경사지였으며, 위르치히의 존넨우어가 있는 곳은 완전히 절벽으로, 가끔 조금씩 평지가 있는 작은 밭에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저와 같이 험악한 토양에서도 세계적인 와인을 생산 할 수 있는 리슬링 포도가 재배된다고 생각하니 사진을 찍으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 배는 에르덴[면적 3,690m2, 인구(2010) 380명이 사는 마을]을 지나고 있었으며, 에르덴을 지나자마자 강의 왼쪽으로 단일 밭 풸스터라이(1급 밭, 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여러 사람들이 한창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해주어 나도 손을 흔들어 답례하였다. 또 다시 우리가 탄 배가 다리 밑을 지나, 뢰스니히[면적 2,530m2, 인구(2010) 429명이 사는 마을] 마을을 지나니, 왼쪽으로 단일 밭 후베르투스라이(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가 전개되었다. 조금 후에 킨하임[면적 9,070m2, 인구(2010) 795명이 사는 마을]을 떠나 강의 양편, 왼쪽에는 있는 단일 밭 로젠베르크(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와 바른쪽에 있는 단일 밭 뢰머스항(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을 지났다. 로젠 베르크가 있는 왼쪽의 밭은 평지를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는 포도밭이었다.

 

이럭저럭 시간이 흘러 크뤠브[면적 14,750m2, 인구(2010) 2,243명이 사는 마을]를 통과 할 때는 오전 1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크뤠브 뒤쪽으로 총합 밭인 크뤠버 낙타르쉬가 보였다. 크뤠버 낙타르쉬에 스테펜스베르크, 레터라이 등과 같은 단일 밭 6개가 여기에 속한다. 크뤠브를 지나니, 바른쪽으로 볼프마을이 나타났다. 바로 이 볼프의 맞은편 언덕에 단일 밭 골트그루베(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가 위치하고 있었다. 골트그루베라고 쓰여 진 간판 밑에는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강의 바른쪽에 있는 단일 밭은 샤츠가르텐(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이다. 잠시 후에 우리가 탄 배가 드디어 트라벤-트라르바흐에 도착하였다. 그때가 11시 50분이었다.

 

트라벤-트라르바흐(Taben-Trarbach)에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트라르바흐 읍내로 서둘러 달려갔다. 우리는 우선 1899년 브루노 뫼링(Bruno Möhring)의 설계로 지어진 트라벤-트라르바흐를 잇는 모젤 다리(Moselbrücke)의 다리정문을 찾아가 보았다.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내부에는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그 다음 우리는 파노라마와 같이 전개되는 트라벤-트라바흐의 경치를 보기 위해 언덕 위에 폐허가 된 성 그레벤부르크(Grevenburg, 저자 주: 이 성은 1350년에 건축되어 1734년에 파괴됨)로 올라가 보려 하였으나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념품을 파는 가계에 들려 가계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에게 그레벤부르크로 올라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다른 교통편도 있으나 당신네들 같이 젊으면(서양인 들은 동양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고 나이를 잘 모른다. 어쨌든 기분 나쁘지는 않은 말이었다) 15분이면 올라갈 거라고 하면서 성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있는 곳을 가리켜 주었다. 나와 집사람은 언덕위로 올라가는 매우 좁은 골목을 통해 비교적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올라가는 양 옆에는 검은 색을 띈 점판암으로 이루어진 포도밭에 아직도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가계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 했듯이 우리가 좁은 길을 통해 언덕을 15분 이상 걸어 올라가도 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역시 할아버지가 우리를 목측으로 생각한 나이보다는 확실히 더 늙은 것 같다고 집사람에게 농담을 하며 크게 웃었다. 25분쯤 더 포도밭 사이로 올라가니 보불전쟁(1870-1871) 당시에 전사한 4명의 이 지역 출신 군인들을 추모하는 하는 전쟁기념비가 있었다. 거기서 약간 숨을 가누고 5분 정도 올라가니 바로 폐허가 된 그레벤부르크가 나타났다.      

 

그레벤부르크에서 바라본 트라벤 전경

 

그레벤부르크에서

우리가 그레벤부르크에 도착했을 때가 거의 12시 40분쯤인 것 같다. 17세기 후기부터 지휘관의 숙박소로 사용되었던 폐허가 된 성에는 지금은 숙박소의 서쪽 전면(9m)만 이 조금 남아 있었으며, 성의 기초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 여기서 트라벤 쪽으로 내려다 본 경치는 과연 장관이었다. 여기서 나는 모젤 강의 상류 쪽과 하류 쪽을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조금 내부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식당과 휴게소가 있었으며,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관광객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성의 뒤편으로 돌아들어가니 카우텐바흐(Kautenbach) 계곡에 펼쳐져 있는 포도밭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이 계곡의 우측에 단일 밭 트라우벤하우스와 좌측에 부르크베르크(모두 총합 밭 슈발츠라이에 속함)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아침에 약간 흐렸던 날씨가 활짝 개여 카우텐바흐 계곡 쪽에 나타난 깨끗하게 보이는 건물, 약간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의 숲 그리고 비탈에 심어진 포도밭은 정말로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맑은 공기,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그 장소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집사람은 나에게 지금 내려가서 회항선으로 크뤠브에 들려 크뤠버 낙타르쉬 와인을 시음하자고 제안하여 나도 하산을 서둘렀다. 우리가 크뤠브에 들리려면 빨리 내려가서 트라벤 쪽의 강에 설치되어 있는 선착장에서 오후 1시 20분에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서둘러 하산하여 다리를 건넜으며 거의 1시 15분에 선착장에 도착하여 배를 탔다. 배가 떠났을 때 트라벤-트라르바흐를 좀 더 시간을 갖고 샅샅이 돌아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겐 이번 여행은 포도밭과 와인에 비중을 둔 여행이지 문화 및 역사관광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포도밭 하나라도 더 보고, 지하 와인 양조장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나에겐 좋지 않은가? 그 순간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새로운 행선지를 제안하는 집사람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문화 및 역사관광은 다음을 기약해 보자. 이러한 생각을 나 혼자 하고 있는 사이에 배가 서서히 크뤠브에 도착하였다.

 

포도압착기(크뤠브 마을)
 

크뤠브에서

이때가 오후 1시 50분이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우선 관광정보 센터를 찾아 갔다. 거기서 우리는 관광정보 진열대에서 간단한 마을 지도를 하나 빼어 들고 마을로 들어섰다. 바로 모젤바인쉬트라쎄(Moselweinstraße) 길을 건너니 크뤠브에서 매우 유명한 건물인 드라이기벨하우스(Dreigiebelhaus, 세 첨단 지붕 집, 구 마을 사무소)가 나타났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독일식 목골가옥으로 매우 규모가 크고, 균형이 잘 잡힌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 건물은 지금은 식당과 여관과 같은 숙박업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거기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서니 성 요셉(St Josef) 양로원 건물이 나타났다.

 

이 마을은 뒤편이 온통 총합 밭인 낙타르쉬[저자 주: ''바위로 된 언덕''을 의미 또한 고대 전설 속의 신들의 음료(감로)인 단어 ''넥타르(Nektar)''에서 파생했다고도 함]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어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이었다.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가끔씩 보일 뿐이었다. 마을의 중심지로 들어 가 볼수록 모두가 꽃과 포도나무로 장식된 집들이 눈에 띄었으며, 옛날에 사용하던 포도압착기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다. 시간도 이미 오후 2시 20분을 넘었고 배도고파, 약간 휴식도 취하면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의 야외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Echternacher Hof). 식사로 집사람은 스테이크, 나는 슈바이네슈니첼(Schweineschnitzel, 일종의 돈가스)을 주문하고, 오늘 아침에 유람선 매표소의 아저씨가 추천한 포도주, 크뤠버 낙타르쉬를 두잔 주문하였다. 마침 따뜻한 햇볕과 맑은 공기로 야외식당은 매우 쾌적한 분위기였다.

 

좀 시간이 지나자 음식보다 먼저 식당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크뤠버 낙타르쉬를 가져왔다. 크뤠버 낙타르쉬의 맛은 상쾌한 약간 신 맛을 띈 단맛이 강한 화이트와인으로 색깔은 담황색이었으며, 신선한 과실 향을 지니고 있었다. 나와 같이 술이 약한 사람도 맛이 좋아 단숨에 마시고 싶을 정도로 와인이 목을 넘어갈 때 매우 부드러움을 느꼈다. 우리가 와인을 시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주인아저씨가 직접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배가 고파 음식을 맛있게 먹었으며, 동시에 나는 식전에 마신 와인의 술기운이 돌아 몸이 나른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나른하게 보낼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주인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와 음식이 맛있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에게 맛있었다고 말하고, 바로 계산을 하겠다고 했으며, 크뤠브에서 한 와인양조장을 견학할 수 있겠냐고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친절하게 한 와인 양조장을 추천해주면서, 그쪽으로 가면 양조장 시설을 견학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대개 독일에서는 와인 양조장을 견학한 후에 그 집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몇 병 사주는 것이 예의이다. 그와 같은 기본만 지킬 수 있으면, 얼마든지 와인 양조장 견학을 할 수 있다. 우

 

리가 리터-궤츠-쉬트라쎄(Ritter-Götz-Straße)로 접어드니 우측으로 바인굿 칼 슈나이더-한(Weingut Karl Schneider-Hahn)이라는 양조장이 있었으며, 중년 부부가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그 집 앞을 서성거렸다. 우리도 거기에 들려 중년 부부와 함께 크뤠버 낙타르쉬 와인 두 병을 신청하고,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당신네 지하 양조장을 견학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기꺼이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하며, 다른 손님을 보내고 우리를 지하로 데리고 내려갔다. 그 동안 팔츠에서 많이 본 바와 같이 이 집도 70년대 중반까지는 플라스틱 발효조를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사용하고 와인의 숙성은 오크통을 사용해서 한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주인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작별의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다시 베른카스텔-쿠스로 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 강가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넉넉히 남아 백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는 강가를 잠시 산책하였다. 이들 백조는 사람을 피하지 않았으며, 바로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마음껏 먹고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맞은편의 산기슭에는 쪼가리 밭에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었으며, 그 산의 정상에는 폐허가 된 수도원의 잔재가 십자가와 함께 보였다. 잠시 후 우리는 그날의 마지막 배에 승선하여 저녁 7:00시에 베른카스텔-쿠스에 도착하였다.

 

와인을 짠 포도 지게미
 

안델에서 마지막 밤

베를카스텔-쿠스에서 다시 가로등이 켜있는 자전거 및 산책길을 따라 안델의 숙소까지 돌아오니 7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우리가 이층의 방으로 올라가 보니 우리 방의 방문에 본 부인이 쓴 쪽지가 붙어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자기네 집 양조시설을 보여 줄 수 있으며, 내일 몇 시쯤 비틀리히에 기차를 타러 가는 지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양조장 관람은 이미 팔츠의 루츠 부인이 이곳에 숙소를 예약할 때 이미 본 부인에게 부탁하였던 것으로, 우리는 새삼스럽게 루츠 부인의 우리에 대한 배려에 깊은 감사를 느낄 뿐이었다.

 

우리는 바로 일층으로 가서 본 부인을 만났다. 본 부인은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으며, 지하로 내려가 본씨네 양조장 시설을 구경시켜주었다. 본씨네는 모젤지방에서는 비교적 많은 6.5헥타르의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었으며, 대개 평지에 밭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선 압착기, 프라스틱 발효조, 스테인리스 발효조 및 와인 숙성오크통을 견학하였다. 그 다음 본 부인은 우리를 오늘 하루 종일 포도를 수확하고 지금 수확기(Vollernter)를 세차하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우리를 자기 남편에게 소개 하였다. 본씨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으로서 매우 강직한 인상을 지닌 분이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 나오는데 와인을 짠 포도 지게미가 쌓여 있었다. 내가 본 부인에게 이것은 바로 밭에다가 유기질 비료로 사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본 부인은 일단은 증류기로 이 포도지게미를 증류하여 트레스터브랜디(Tresterbrand)를 뽑은 다음에 비료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바로 이탈리아의 그라파(Grappa)가 포도지게미로부터 생산되는 브랜디이다. 물론 본씨의 와인 양조장에서도 브랜디와 여러 가지 밭의 명칭이 붙은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이 생산되고 있었다(대개 병당 4-8유로).

 

우리는 본씨 집의 일층 식당에 들려 내일 팔츠로 돌아갈 때 선물로 가지고 갈 와인 두 병을 샀다. 하나는 보나파르트(Bonapart)의 이름이 붙은 2008년 산 리슬링 쉬페트레제였으며, 다른 한 병은 본 부인의 딸이 2011-1012년 베른카스텔-쿠스의 와인여왕으로 선발되어 기념으로 만든 모젤라 안네 2세(Mosella Anne II, 2009년 산)로 마찬가지로 리슬링 슈페트레제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드라이한 화이트 리슬링을 두잔 주문하여 마셨다. 이 집의 리슬링와인도 약간 신선한 산미와 매우 상쾌한 과실 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마실 때 마다 부드럽게 목을 넘어 갔다. 나는 와인을 마신 후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 했으며, 내일 로마시대에 건설된 고대 도시 트리어(Trier)를 방문하기 위해 침실로 가서 잠을 청하였다. 비록 내가 모젤을 방문한 기간이 2박 3일로 짧았지만, 나는 그 동안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고 생각했으며, 항상 조언자로서의 집사람과 우리를 그 동안 친절히 대해준 본 부인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이에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참고문헌

1. Dieter Braatz et. al (2007): Weinatlas Deutschland, Hallwag
2. Joel B. Payne (2011): Gault Millau, WeinGuide Deutschland 2012, Christian 
3. RWE Power AG (2004): Die Moselkraftwerke, Dauerlaufer der Stromversorgung
4. Schönigs Reiseführer (?): Die Mosel -von Trier bis Koblenz-, 12 Auflage. 
   Schönigs Verlag    

 

Websites:
http://de.wikipedia.org/wiki/Bernkastel-Kues
http://de.wikipedia.org/wiki/Burg_Landshut
http://de.wikipedia.org/wiki/Bernkasteler_Doctor
http://de.wikipedia.org/wiki/Traben-Trarbach
http://de.wikipedia.org/wiki/Grevenburg
http://de.wikipedia.org/wiki/Kr%C3%B6v
http://de.wikipedia.org/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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