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1930년대 내전을 겪은 후 30년 넘게 이어진 프랑코 독재 정권 동안 세계 경제에서 크게 고립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조금씩 경제 자유화가 이뤄졌는데, 이때 포도재배자들은 서로 힘을 합쳐 공동의 와인 양조 시설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라 만차 와인 협동조합' 기사 참고).
1970년대 프랑코의 독재가 끝난 뒤 1980년대 EU의 전신인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스페인은 큰 경제 발전을 이뤘다. 여전히 이 시기에도 협동조합 형태의 와이너리가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개인 소유 와이너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스페인의 자본시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엘 빈쿨로(El Vinculo) 테이스팅 룸]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 따르면 우리는 뛰어난 개인을 볼 때, 그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들의 개인적인 성공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로부터 특별한 기회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즉 와이너리를 설립한 개인은 모두 열의에 가득 차고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동시에 당시 성장하던 자본시장의 기회를 활용하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스페인 중부 라 만차 역시 주요 마을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와인 협동조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만큼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는 개인 소유 와이너리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몇몇은 라 만차를 대표하는 와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지난 가을 EUWINA(European Wine Ambassadors) 캠페인의 일환으로 라 만차를 방문하면서 두 개의 중요한 개인 소유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두 와이너리를 소개한다.

[보데가 아요소 센트로 에스파뇰라스의 배럴 룸. 현재 총 3,800개의 프렌치 및 아메리칸 오크통을 보유하고 있다]
보데가 아요소 센트로 에스파뇰라스(Bodegas Allozo Centro Españolas)
미겔 디아스(Miguel Angel Valentín Díaz)는 리오하에서 10년간 와인 양조자로 일하다가 1991년 라 만차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대형 와이너리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총 14명 사업가들의 협력을 받아냈다. 이들의 투자금을 이용해 라 만차의 핵심 지역인 토메요소(Tomelloso)에 250헥타르의 포도밭을 구입했다. 또한 포도밭 한가운데 보르도 샤토(Chateau) 스타일의 큰 와이너리 건물을 지었는데, 이는 라 만차에서 첫 번째 샤토 스타일의 와이너리 건물이었다.
와인 협동조합은 각 포도재배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반면, 보데가 아요소는 투자가들이 서로 협력해 와이너리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와인 협동조합은 모든 조합원들이 포도 공급 및 와인 양조에 참여하며, 모든 의사결정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투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와이너리의 경우 각 투자가들은 와인 생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투자금에 따라 와인 판매의 이익금을 나눈다. 스페인의 자본 경제 체제가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데가 아요소의 와인들. 카사후아나 브랜디의 품질도 훌륭하다]
보데가 아요소는 적극적으로 현대 기술을 도입해 라 만차의 와인 양조의 현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와이너리로 손꼽힌다. 또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등 국제 품종을 라 만차로 가져온 선구자이기도 하다. 또한 라 만차의 전통을 보존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예를 들어 이들은 1892년부터 브랜디를 만들어 온 역사 깊은 카사후아나(Casajuana)를 인수해 브랜디를 생산하고 있다. 솔레라 방식으로 브랜디를 만들어 100년 넘은 카사후아나 브랜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보데가 아요소는 설립자의 아들 미겔 라라(Miguel Angel Valentín Lara)가 와인을 양조하고 있다. 이렇게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것 또한 개인 소유 와이너리의 큰 특징이다. 리오하, 피에몬테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와인 양조를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포도밭에 바이오다이내믹 등 친환경적 농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활발한 성격에 영어도 유창하며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 외에도 와이너리에서 콘서트 등 이벤트도 자주 개최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상을 수상했고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도 미래가 무척 기대되는 와이너리다.

[보데가 아요소를 이끌고 있는 미겔 라라]
엘 빈쿨로(El Vinculo)
2년 전 세상을 떠난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Alejandro Fernández)는 스페인 와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2살부터 학교를 떠나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가 직접 기계식 비트(Beet) 수확기를 만들고 판매했는데 이 수확기가 큰 성공을 거뒀다. 특허를 내서 자금이 모이자 39세인 1972년 고향 근처 리베라 델 두에로에 작은 와이너리 틴토 페스케라(Tinto Pesquera)를 설립했다.
그는 협동조합에서 와인을 양조하던 테오필로 레예스(Teófilo Reyes)의 도움을 받아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들로 인해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리베라 델 두에로가 1982년 DO를 받으며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성장했다. 알레한드로 역시 와인 가문 출신답게 뛰어난 와인 테이스팅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템프라니요의 장인'으로 불렸다. 틴토 페스케라는 로버트 파커에게 세계 최고 와이너리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들의 대표 와인 하누스(Janus)는 '스페인의 페트뤼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보데가 엘 빈쿨로. 명성과 인기에 비해 소박한 규모다]
알레한드로는 1999년 라 만차 곳곳을 다니다가 캄포 데 크립타나(Campo de Criptana) 지역에서 고령의 템프라니요가 자라는 포도밭을 찾아냈다. 이곳에서 또 다른 고품질 템프라니요 와인을 만들 수 있겠다고 직감하고 보데가 엘 빈쿨로(Bodega El Vinculo)를 설립했다. 또한 그는 고령의 아이렌(Airén) 품종으로도 좋은 품질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이름과 아이렌을 더해 알레아이렌(Alejairén)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한 화이트 와인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아이렌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바꿔버렸다.

[엘 빈쿨로 포도밭 매니저 페페(Pepe)와 제너럴 매니저 롤리(Loly)]
엘 빈쿨로의 성공은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가 특허를 이용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스페인의 경제 체제 발전과 맞물려 있다. 또한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성공과 와인 평론가의 긍정적 평가 등 다양한 요소와 알레한드로의 개인적인 열정이 만난 결과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와이너리들(틴토 페스케라, 콘타도 데 아싸(Condado de Haza), 데헤사 라 그랑하(Dehesa La Granja), 엘 빈쿨로)은 파밀리아 페르난데스 리베라(Familia Fernández Rivera) 그룹의 이름으로 꾸준히 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알레한드로가 찾아낸 파고 데 라 골로사(Pago de la Golosa) 포도밭에서 나오는 그랑 레세르바와 알레아이렌을 비롯한 엘 빈쿨로의 와인들은
라 만차 뿐 아니라 스페인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손꼽힌다]
와인 협동조합이 더 나은 형태일까? 아니면 개인 소유 와이너리가 더욱 발전된 모습일까? 사실 이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종류가 다른 와이너리이기 때문이다. 품질의 차이를 논하기도 힘들다. 대다수의 현대 와인 협동조합에서는 대량 생산 와인 외에도 특별한 테루아에서 생산되는 놀라운 와인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개인이 소유한 와이너리라고 해서 모두 품질이 좋은 와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모두 최선을 다해 생산한 맛있는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을 엿보는 것은 와인 세계를 더욱 깊숙이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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