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스토리

독특하고 매력적인 슬로베니아 와인, 크리스탄치치의 모비아(Movia)

한 나라의 국경선은 때론 매우 정치적인 이유로 정해진다. 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점차 삶의 터전을 넓혀나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국경이 정해지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국제적 역학 관계에 따라 강제적으로 정해진 국경도 많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직선 형태 국경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의 삶은 직선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편의로 땅을 나누어 버린 것이다. 전 세계 여러 분쟁 지역 역시 전쟁의 결과로 인해 국경이 설정되곤 한다. 현재 어느 지역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만약 포도재배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포도밭 사이로 국경이 생겨버린다면 어떨까?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전쟁의 결과 때문이라면?


[크리스탄치치 가문이 소유한 포도밭은 어느 날 국경이 생겨 두 나라로 나누어졌다. (출처: Movia)]


오슬라비아 지역에 천년 넘게 살고 있던 슬라브 민족은 최근 백 년간 이런 일을 끊임없이 겪었다. 이 지역은 본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경선이 변경된 후 갑자기 이탈리아가 되었다. 당시 무솔리니의 전체주의에 지배 당하던 이탈리아는 오슬라비아 지역의 슬라브 민족을 강제로 흡수하고 통합하고자 했다. 사람들의 이름이 이탈리아식으로 바뀌었고 슬라브어 사용은 금지 당했다.  


그리고 세계 2차 대전 후 또다시 국경선이 바뀌며 이 지역의 일부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하게 됐다. 유고슬라비아는 같은 슬라브 민족 공동체로 구성된 국가였지만 공산주의 체제였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던 사람들은 자신의 포도와 와인을 모두 국영 협동조합에 바쳐야 했다. 기술력과 경제력은 점점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양 대전에 커다란 피해를 받았던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1991년 이 지역에서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슬라브인들은 치열한 독립전쟁을 거쳐 드디어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고 슬로베니아라는 국가를 탄생시켰다. 이후 힘든 재건 기간을 거쳐 2004년 유럽연합에도 가입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생긴 국경선은 여전히 이 지역 사람들을 이탈리아인과 슬로베니아인으로 나누고 있다. 

(출처: https://quentinsadler.wordpress.com)]


국경의 제약은 2007년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국경 개방 조약인 셍겐 조약을 체결하면서 비로소 완화됐다. 이 지역은 백 년 가까이 예전에는 같은 문화 지역이었던 이탈리아 땅으로 가려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자신의 포도밭이 갑자기 이탈리아 땅이 되는 바람에 일을 하러 갈 때마다 검문소로 갈 수밖에 없던 농부들도 있었다. 


크리스탄치치(Kristančič) 가문의 포도밭 또한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각기 다른 나라의 땅으로 나뉘었다. 현재는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지만 여전히 동쪽에 위치한 포도밭은 고리슈카 브르다(Goriška Brda)라고 불리는 슬로베니아 땅이고, 서쪽 포도밭은 콜리오(Collio)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땅이다. 사실 브르다와 콜리오는 슬로베니아어와 이탈리아어로 모두 '언덕(hill)'이라는 뜻이다. 사실상 동일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레스 크리스탄치치(Aleš Kristančič)는 모비아 와이너리를 8대째 이어오고 있다. 와이너리의 역사는 17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모비아(movia)라는 이름은 1820년부터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는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 체제에서 조합의 가입을 거부한 삶을 살았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체제를 반대한다는 것은 한평생을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덕분에 모비아는 현재 슬로베니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족 소유로 유지해온 와이너리로 꼽힌다.


[크리스탄치치 가족의 모습. 알레스는 현재 두 딸과 아들과 함께 모비아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Movia)]


전통의 맛을 찾아서

21세기 말 슬로베니아 브르다, 이탈리아 콜리오 지역 와인계에서는 흥미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먼저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연주의 양조 방식이다. 또한 몇몇 와인메이커들이 앰버 와인 혹은 오렌지 와인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스킨 침용 방식의 화이트 와인은 이 지역에서 몇백 년 혹은 천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와인 양조 스타일이었다[1]. 샤샤 라디콘이나 요슈코 그라브너로 대표되는 인물들은 거의 잊힌 와인 양조방식을 복원했으며 지금까지 와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시 알레스 크리스탄치치 역시 현대식 와인 양조 방식을 버리고 전통으로 돌아갔다. 그가 그라브너와 라디콘 그룹[2]들과 얼마나 의견과 정보를 교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스스로 저개입 생산 방식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그라브너가 자신의 첫 실험작을 선보였는데 크리스탄치치는 이미 1988년에 현대식 와인 양조 방식에서 탈피했다.


와인 스타일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산화황을 최소화하고 스킨 컨택 양조 방식을 선호하지만 그는 자신의 와인을 보다 일관성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와인을 발효 및 숙성할 때 암포라나 크베브리 대신, 특별히 제작된 나무통(바리크)과 콘크리트 에그를 사용한다. 세심하게 관리하는 내추럴 방식(Controlled Natural)으로 평가받는 모비아의 와인은 다른 슬로베니아 자연주의 와이너리의 와인들보다 더욱 일관된 품질을 보여준다. 또한 포도를 재배할 때도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을 선호한다. 이는 대표 와인 루나르(Lunar)에서 확실히 드러나는데, 포도 재배부터 래킹, 병입 등 양조 과정의 모든 시기를 달의 모양에 따라 결정한다. 


[슬로베니아에서 4년간 농사를 짓다가 귀국한 박순석 소믈리에]


슬로베니아 농부

한국에서 활동하던 박순석 소믈리에는 슬로베니아로 건너가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 일반적으로 소믈리에들은 프랑스를 비롯해 몇몇 국가를 선택하지만, 그는 조금 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 서쪽 프리모르스카(Primorska) 와인 지역에 갔다가 우연히 포도밭을 빌렸고 직접 와인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었다. 슬로베니아 농부로 지낸 지 4년. 다시 귀국한 그는 지난 8월 28일 모비아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자리에서 슬로베니아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농사를 지은 프리모르스카는 슬로베니아의 새로운 도전이자 와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역이다[3]. 석회암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파파 밸리 등 큰 계곡과 함께 부리야(Burja)라는 엄청난 강도의 바람이 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슬로베니아 와인 산지 중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비아는 이 지역을 상징하는 와이너리와도 같다. 모비아는 슬로베니아 와이너리로는 유일하게 '2023년 월드 베스트 빈야즈(World's Best Vineyards)'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와 함께 테이스팅한 모비아 와인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박순석 소믈리에와 함께 테이스팅한 모비아 와인 6종]


모비아 푸로(Movia Puro) 2017

모비아의 스파클링 와인은 매우 특이하다. 일단 와인이 거꾸로 서 있다. 데고르주망(dégorgement)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스파클링 와인에는 2차 발효를 완료하고 남아있는 효모 찌꺼기들이 여전히 들어있다. 따라서 오픈하기 전 와인을 거꾸로 세워 아랫부분에 효모 찌꺼기를 모으고 오픈해 직접 데고르주망을 해야 한다. 모비아에서는 이 작업을 물에서 하기를 추천한다.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실 뵈브 클리코 여사가 르뮈아즈(remuage)를 개발하고 데고르주망이 일반화된 19세기 이전에는 모든 스파클링에 효모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모비아가 전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크리스탄치치는 사실 이 방식이 와인을 더 안정화하고 품질을 보존한다고 믿고 있다. 효모 찌꺼기는 와인 양조 시 풍미를 증진시키면서 와인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맛에서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샤르도네 100%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과실향을 찾을 수 있다. 하얀 배, 사과, 레몬, 잘 익은 열대과일류의 향도 느껴진다. 약간의 어시(earthy)함도 느껴진다. 향과 맛 모두 훌륭한 강도를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입안에서 스파클링 자체는 강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효모로 인한 크리미한 맛과 부드러운 풍미가 기분 좋게 마무리해 준다.


모비아 푸로 로제(Movia Puro Rose) 2016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든 피노 누아 100% 로제 스파클링 와인이다. 베리향이 더해진 과일 주스가 연상되는 다양한 과실향이 기분 좋다. 거기에 더해 맛있는 야채 주스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약간의 허브와 꽃 뉘앙스가 효모 캐릭터와 만난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맛 자체가 좋고, 매우 다양한 음식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와인이다. 여러 음식과 함께 할 재미있는 와인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알리스 크리스탄치치가 직접 설명하는 푸로 오프닝 방법]


모비아 소비뇽 블랑(Movia Sauvignon Blanc) 2021

품종 특유의 기분 좋은 산도를 지닌 깔끔한 와인이다. 껍질과의 침용은 2일 동안만 진행했고 콘크리트 에그에서 8개월간 숙성했다. 소비뇽 블랑의 그린 노트가 하얀 배 등 과실향과 은은하게 잘 어우러진다. 껍질 침용을 약하게 했기 때문에 와인을 보호하기 위해 약간의 이산화황을 포함했지만,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훨씬 낮은 양(46mg/L)이다.


모비아 레불라 리볼라(Movia Rebula Ribolla) 2020

레불라(Rebula)는 모비아가 위치한 고리슈카 브르다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이다. 이탈리아 콜리오에서는 리볼라 지알라(Ribolla Gialla)라고 부른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매력적인 품종으로, 많은 슬로베니아 와인메이커들이 앰버 와인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품종으로 레불라를 꼽곤 한다. 껍질 침용을 오래 진행해 색이 훨씬 진하고 포도 껍질에서 오는 개성 있고 다양한 향이 꽃바구니처럼 피어오른다. 바디감도 상당하고 풍미도 좋아 앰버 와인의 매력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왜 슬로베니아 와인메이커들이 레불라 품종을 자신들의 소울(soul)로 여기는지 느낄 수 있다. 껍질에서 나온 성분 자체가 와인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이산화황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모비아 루나를 디캔팅 중인 박순석 소믈리에]


모비아 루나(Movia Lunar) 2017

모비아의 아이콘 와인이다. 와인의 이름 그대로 달의 움직임에 따라 와인을 발효하고 병입해 생산한다. 레불라 100%를 사용했고, 포도를 좀 더 늦게 수확해 특별히 제작한 바리크에서 8개월간 침용 및 발효 숙성했다. 그 후 남아있는 효모 찌꺼기를 와인과 함께 병입하며, 서빙 전 와인을 세워놓고 효모 찌꺼기를 가라앉힌 후 디캔팅한다. '와인의 최종 완성은 서빙하는 소믈리에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모비아의 철학 중 하나다.

루나의 병 크기는 1L로 효모 찌꺼기가 은근히 많아 디캔팅을 하면 일반 와인병 정도 수준의 맑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효모 찌꺼기와 섞인 와인도 한번 테이스팅 해보길 추천한다. 상당히 부드럽고 다양한 풍미가 있다. 와인의 강도 및 풍미 등도 레불라 리볼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마시기 쉽고 매력이 가득하니, 제대로 된 내추럴 방식의 앰버 와인을 접하고 싶다면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하는 와인이다.


모비아 모드리 피노 누아(Movia Modri Pinot Noir) 2017

슬로베니아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품종에 적합한 토양이 많지만 고리슈카 브르다를 포함한 프리모르스카 지역에서는 슬로베니아 최고의 레드 와인이 나오기도 한다. 피노 누아도 이 지역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준다. 예쁜 베리향이 잘 피어오르고 밑바탕에 은은한 오크 뉘앙스가 느껴진다. 매우 섬세하게 양조된 와인이다. 산도의 밸런스, 피니시의 진한 풍미까지 피노 누아 품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약간의 펑키함도 느낄 수 있는데, 잘 컨트롤되어 약간의 포인트와 재미를 더해준다.


모비아는 이탈리아 브랜드를 유통하는 에티카 와인스가 소개하는 브랜드로, 현재 국내에서는 (주)에노테카코리아가 수입하고 있다.


[다양한 색과 풍미가 가득한 모비아의 와인들]

  

[1] 엠버 와인 및 오렌지 와인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크베브리와 엠버 와인 가이드

[2] 20세기 말, 대부분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이루어진 양조 전문가들의 모임이 구성됐다. 이들은 기존 현대식 와인 양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을 실험하고 연구해 발전시켰다. 주요 회원으로는 스탄코 라디콘, 요슈코 그라브너, 에디 칸테, 발터 믈레츠니크 등이 있다.

[3] 다음 글에서 더욱 자세한 슬로베니아 와인 지역과 와인 소개를 찾아볼 수 있다. '슬로우, 하지만 가장 빠르게 - 슬로베니아 와인에 대하여'

프로필이미지유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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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3.09.11 10:13수정 2023.09.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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